아무런 계획도 없이 시작한 이민, 그 끝은 무엇일까?

그날의 결정이 내 삶을 바꿨다

by ClaireH

그날, 아직도 그 아픔은 잊히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 첫 시험을 열흘 앞둔 밤이었다.

식은땀이 흐르고, 악소리조차 안 나올 정도의 통증.

배를 움켜쥐고 기어간 안방에서 겨우 내뱉은 말.

"엄... 마... 너무 아파.."


아빠는 새벽에 날 업고 응급실로 데려갔다.

응급실 바닥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게 내 미래를 암시한 걸까.

나는 맹장 수술을 받았고, 그대로 시험은 망쳤다.


실업계 디자인 고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2학년이 중요한 시기라는 걸 너무

잘 알았기에 더 충격이었다.


입원 중, 아빠는 툭 던지듯 말했다.

"유학이나 가라."


그 말이 나를 도피쳐로 숨게 이끌었다


꿈도, 계획도 없이.

도망치듯이.


엄마, 남동생 그리고 나.

셋이서 그렇게 떠났다.

한국에서 당연히 치러야 하는 수능

그냥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 막연하게 도망치고 싶었다.

그날 그 밤의 고통이 날 여기로 이끌게 했다.


시드니 도착 첫날.

날씨는 너무 화창하고 공기도 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집으로 향하는 그 기차 안은

악취에 에어컨 하나 없이

열어젖힌 그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으로

여러 사람이 의존해 달리던 기차였다.

그 순간 나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화려한 도시, 금발 외국인을 기대했던 나는

'버우드'라는 이름의 동네에서

수많은 중국인 사이에 살아야 했고,

'스트라스필드'라는 곳은

한국인들만 가득한 작은 타운에 불과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시작하는 그 첫날,

나는 구토와 현기증으로 하루를 보냈다.

미성년자인 나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아... 우리 셋, 앞으로 어떻게 살지."


엄마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때의 엄마에게 깊이 박수를 보낸다.

엄마라서 대단했다,

용감했다.


그리고 우린, 살아가야만 했다.


나는 6살 어린아이들과

같은 반에 앉아 영어를 배웠다.


쪽팔리고, 서럽고, 숨고 싶었지만

그 수치심이 오기가 되었고,

그 오기가 나의 첫 번째 목표를 만들어줬다.


"그래, 고등학교 졸업장 따보자."


그렇게 난,

이민자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 순간 버텨내며 살아왔다.

이민자의 삶, 엄마의 삶, 여성의 삶을

누구보다 진하게 치열하게 지독하게 겪어낸 시간들.


나의 시간들을

한 편 한 편, 진심에 담아 써 내려가려 한다.


이 글들이 누군가에게 살아가는 위로이자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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