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누가 좋아?
코로나가
이제 막 백신을 만들어 접종을 시작하기 직전,
내 친동생에게 꿈의 직장을 소개해줬던 지인이 나에게도 한 직장을 권유해 주었다.
“일은 시작하면서 배우면 돼 , 어렵지 않아.
나랑 이사님이 번갈아 출장 갈 거야 , 그래서 그동안 시드니에 남아 일을 맡아줄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해.”
그 말에 고맙기도 했지만, 걱정이 앞섰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그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을지 불안했다. 이사님과 면접이 남아 있다 하며 이력서를 보냈고, 면접 약속 장소로 향했다.
회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생이 다니는 회사 대표님이 투자자로 있는 계열사였다.
본점은 이미 베트남에 있었고, 시드니에도 회사를 세워 확장할 계획이라고 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씀드렸고, 면접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이사님께 지금은 저녁에 대리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한두 달 후 정식으로 회사가 세워지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이사님이 다시 연락을 주셨다.
“혹시 아침에 알바 가능해요? 지금은 저녁에 대리 일을 하잖아요. 낮에 시간 되면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아…네!!”
그렇게 이사님은 친한 지인의 제조업체를 소개해주셨고, 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단순 업무를 했다. 그 회사 위층에는 이사님의 오피스가 있었고, 제조업체는 동생 회사와 거래처 관계라 매주 두 번쯤은 동생과도 마주쳤다.
회사 분위기는 늘 화기애애했고 밝았다.
몇 달 동안 제조업체에 다니며 점심이나 쉬는 시간에 이사님과 회사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미래를 그려 나갔다.
조금은 더 밝아진 앞날을 상상하며 꿈이 부풀어 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제조업체 사장님이 회사를 본격적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고, 새로운 직원들이 들어온다는 소식도 들렸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이었고, 언젠가는 이사님의 회사로 옮겨갈 예정이라 현재 회사가 커지든 줄어들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복지도 좋았고, 그 자체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사장님은 점점 말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네가 갈 회사는 언제 열릴지 몰라. 미지수야.”
처음에는 내가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씀이라 생각했다. 그저 잘못 알고 계시겠지 했다.
불안한 마음에 이사님께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사장님이 자꾸 클레어 씨 달라고 하시는데, 제가 안 된다고 못 박았어요. 걱정 마세요.”
그 말을 듣고 안심했다.
그래서 사장님의 잦은 ‘고춧가루 발언’은 그냥 흘려듣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사장님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너 이제 결정해야 해. 우리 회사로 올래, 아니면 저쪽 회사로 갈래? 내가 그 회사 사정을 잘 알아. 대표한테 직접 들었어. 회사 무산됐대. 그냥 우리 회사로 들어와.”
“정말이요? 저는 이사님께 아무런 얘길 못 들었는데요….”
“정말이라니까! 대표한테 직접 물어봐.”
마침 그 순간, 대표님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얼른 물었다.
“정말인가요? 회사가 무산되었다는 게….”
대표님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네 인생이니까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시드니에 회사를 세울 계획은 있지만 시기가 불확실해졌어. 언젠가는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니 현재 다니는 이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게 좋지 않겠니?”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직접 무산 소식을 들었다.
애써 표정을 숨기려 했지만, 아마도 나는 세상이 무너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곧장 이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저 이쪽 회사로 취직되었다고 하시네요… 회사가 무산되었다고 들었어요.”
“… 다시 연락드릴게요.”
뚝—
너무 퉁명스러운 반응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정말 바빠서 그런 걸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대화들이 어른들 사이에서 오간 것만 같았다.
잠시 후, 나를 소개해준 지인이 연락을 해왔다.
알고 보니 이사님과 지인조차도 나보다 늦게 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
성격 급한 사장님이 먼저 나에게 와서 얘기를 꺼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장님은 내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까 봐 안쓰럽게 여긴 것 같았다.
불확실한 회사를 기다리느니 자기 회사로 들어오라는 호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사장님의 호의를 느끼지 못했었다.
이사님은 짧게 “잘된 거다, 여기서 열심히 하라”는 말만 남겼다. 그 이후 사장님과 이사님은 눈에 띄게 어색해졌다. 같이 점심도, 휴식도 하지 않은 채 서먹해졌다.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모르는 대화들이 오갔고, 그 안에서 때로는 낙동강 오리알처럼 방치된 기분이었고,
때로는 누군가의 계산 속에 끼어 있는 조각 같았다.
내 감정은 무의미했고, 시답잖은 것으로 치부되었다.
결정은 늘 그들끼리 정해졌고, 나는 그저 따라야 했다.
그래서 너무 서글펐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서글픔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나겠지.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꿋꿋이 버텨내며 살아갈 것이다. 제조회사에 들어간 것이 내 100퍼센트 뜻은 아니었지만, 면접을 봤던 그 회사를 다니는 것처럼, 더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왔다.
이 회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작은 사건부터 큰 사건까지 사건사고가 끝이지 않아 나는 건강까지 안 좋아졌었다. (인간 독후감 #7 화 참조)
사장님도 건강악화로 회사일이 잘 풀리지 않아 결국엔 회사는 문을 닫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사장님께서 직원들에게 최선을 다해주셨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안타깝고 정이 많이 든 회사였다. 그래도 평생 내 마음속에 찬란하게 빛난 회사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