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3. 11. 일기
종종 노래 가사나 영화를 보면 애절한 짝사랑의 이야기가 소재로 사용되곤 한다.
가끔 사춘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가 짝사랑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도 상대는 매우 싫어하는데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는 짝사랑 말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니 정말 예쁘고 귀여워서
말 그대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몸은 힘들었어도 전혀 힘들지가 않았다.
행복했다.
그런데 그런 효도는 8세까지라고 하던가
감사하게도 아이가 무럭무럭 건강하게 성장하고 자아가 생겨나면서
그런 행복은 점점 사라져 간다.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부모를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14~15세가 되면 독립을 하는 사회 구조라면 다행인데
한참 부모의 케어가 필요한 나이라는 것이다.
간식, 끼니, 빨래, 학교 준비물, 학원, 진로, 성적 등등을 챙겨주지 않으면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분위기이니까
계속 의사소통을 위해 대화를 시도하고 다가가야 하는 입장이 된다.
밥 준비 되었다. 빨랫감은 제때제때 내놔라. 학교 생활은 잘 되어 가니.
그런데 이런 케어를 아이는 귀찮다는 듯이 밀쳐낸다.
때로는 화를 내기도 한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그런 반응을 받으면 상처받는다.
오기가 생겨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 그래 지가 알아서 하겠지 "
그래도 부모가 되어서 그렇게 계속 의기소침해 있을 수는 없으니
조금 있으면 다시 웃음 지으면서 다가가고
또 아이는 차갑게 밀쳐내고....
이런 생활의 연속이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스토킹 수준이다.
범죄와 같은 스토킹을 이제는 그만하고 아이들에게 신경을 끄고
나도 내 인생을 살아 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든다.
'자기가 필요한 게 있으면 알아서 이야기하겠지'
하지만 그래도 매정하게 신경을 끊을 수가 없어서 오늘도 웃으며 다가간다.
그것은 내리사랑이라는 것이 진짜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