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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립 Apr 04. 2022

우리의 바다가 익숙해진 때

혼자, 둘이 사는 이야기 7


몇 년 전, 조슈아와 속초로 3박4일 휴가를 떠났다. 극성수기를 피한 시기에 4일 내내 날이 흐려서인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 식당에 가고, 식당에 가면 당연하다는 듯 술을 마셨다. 얼근한 채 숙소로 돌아와서는 당시 공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껴두었던 넷플릭스의 '기묘한 이야기 3'를 밤새도록 쳐다 보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에게 마치 일상처럼, 빠질 수 없었던 것은 바다였다.




조슈아는 강원도 출신이다. 건축 일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영월과 정선 등 강원도 산동네에서 살다가 서울로 대학을 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그만 두고 강릉에 있는 전문대학에서 요리를 배웠다. 요리를 하러 다시 서울로 올라온 지 벌써 10년쯤, 조슈아는 이제 서울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서울 사람이 다 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산과 바다를 자신의 근본이라 생각하는 본투비 강원도민이었다.  


반면 나는 경기도 토박이로 수도권 외 지역에는 아주 무지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사투리를 구분하지 못 했으며, 강원도에는 사투리가 있는지도 몰랐다. 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에 어려서부터 여기저기 온갖 바다를 보러 다녔지만, 그저 커다랗고 파란 물덩어리라는 것 외에 큰 감상을 갖지는 않았다. 나이가 좀 더 들고 나서야 아름답다, 정도의 생각은 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바다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조슈아와의 속초 여행 이후였다. 처음으로 바다의 고요와 평화를 깨달았던 날이다. 숙소 앞 편의점에서 급하게 산 조그마한 돗자리를 모래사장에 펼쳐 두고 앉아 몇 시간이고 둘이 어깨를 기댄 채 파도를 바라 보았다. 파도가 조금 크게 치면 신을 내며 맨발로 달려가 그 끄트머리에 발가락을 담가 보기도 했다. 챙겨 간 책은 펴 보지도 않고 모래 위에 던져 둔 채 눈을 감고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매번 비슷한 듯 다른, 철썩- 하는 그 소리와, 역시 매 순간 예상치 못 하게 달라지는 파도의 모양을 그저 멍하니 느끼는 것도 지치면 그대로 드러 누웠다. 돗자리가 워낙 작아 몸통을 누이면 정수리와 다리의 반 정도는 모래 사장으로 뻗쳐 나갔지만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내리쬐는 햇볕으로 익어가는 윗면과, 흐린 날씨에 바닷물을 머금어 습한 모래로 식어가는 아랫면의 간극을 느끼며 낮잠에 빠졌다. 잠결에도 멈추지 않는 파도와 갈매기 소리가 행복했다. 저 멀리 파라솔을 펼쳐 둔 가족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어린 아이의 신나는 비명에 미소를 지었다.


아침을 먹고 그렇게 바다에 갔다가, 배가 고파지면 점심을 먹으러 떠났다가 맥주 한 캔을 들고 다시 바다로 왔다가, 저녁 때가 되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중앙시장에서 음식을 사 숙소로 들어갔다. 새벽까지 드라마를 보느라 지쳐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흐릿한 햇빛 아래 비춰지는 바닷물이 눈에 들어왔다. 쉬지 않고, 하지만 애쓰지도 않고 밀려왔다 돌아가는 파도를 보며 바다는 자신의 근본이라던 조슈아의 말이 떠올랐다. 웬 영감님처럼 말한다고 웃었지만, 그와 함께라면 나에게도 바다가 근본이 될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이후로도 함께 여러 번 바다에 다녀왔다. 특히 조슈아의 본가가 있는 강릉은 이제 누가 찍어 둔 사진만 보고도 "여기 안목항이죠? 요 앞에 그 카페 좋은데.", "여기 송정이네." 할 정도로 그 바다에 익숙해졌다. 일이 있어 강릉에 다녀올 때마다 일부러 조금 돌아서라도 바다를 스쳐 지나가는 길을 택했던 덕이다. 피곤에 지쳐 그냥 서울로 가자고 하면 "바다 안 봐도 돼?" 라고 묻는 조슈아 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우리의 바다'는 수 년 전에 단 며칠 다녀온 속초 앞바다.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떠나기도 찝찝한 이 때에 "여행 가고 싶다~"며 투정을 부리면 자연스레 우리의 입에서 "그 때 정말 좋았는데."로 시작하는 추억이 쏟아져 나오는 바다. 고요와 평화 속, 숨쉬듯이 귀에 몰려오는 파도소리 안에 감싸여 바다가 너의 근본이듯, 너는 나의 근본이고, 나도 너의 근본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바다. 우리의 첫 바다가 익숙해지고, 우리의 더 많은 바다가 익숙해질 때까지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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