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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횸흄 Sep 20. 2023

샤오잔이라는 맑은 늪

샤오잔(肖战, 1991, 중국)

중국 배우들의 이름을 부르자면 꽤나 골치가 아프다. 한자대로 부르자니 우리 귀에 익숙한 것은 좋은데, 중국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과 달라 그것이 과연 맞는 이름인가 회의가 든다. 량차오웨이를 양조위라고 부르는 것이 국내 팬들에겐 익숙하지만 정작 양조위는 자기 이름을 들어도 대답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을 이름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나 역시 한자음대로 이름을 부르곤 한다. 외국어 표기법도 변경되어 공식적인 공간에서는 소리나는대로 표기하는 것이 옳은데도 왠지 어색하고 불편하여 이 글에서조차 병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젊은 배우들은 중국어 발음에 따른 이름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아 덜 혼란스럽다. 왕허디나 양쯔 등의 이름을 굳이 왕학체나 양자라고 병기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다. 그 젊은 배우의 시작이 내게는 샤오잔이었다. 샤오잔의 경우는 90% 이상은 샤오잔 혹은 쟌쟌이라고 부르지 초전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건 세대가 바뀐 까닭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그가 샤오잔이라는 이름을 달고 방영된 <진정령>이 크게 히트를 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샤오잔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국내팬들에게도 늘 샤오잔이다. 


<진정령>을 보고 드라마 자체에 빠진 사람들을 ‘진정령 폐인’이라고 부르는데 진정령 폐인은 크게 둘로 나뉜다. 위무선 역할을 맡은 샤오잔의 폐인이거나 남망기 역의  왕이보의 폐인이 되거나. 나는 샤오잔 폐인이 되었고 당시 <진정령>을 같이 보던 K는 왕이보의 팬이 되었다. 캐릭터만으로 보자면, 남망기는 내가 평소 좋아하는 스타일인 겉은 무심하고 속은 따뜻한 캐릭터이다. 그런데 무심한 것을 넘어 드라마 내내 거의 웃지 않는다.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웃음이 있어야 한다는 걸. 그래서 초지일관 샤오잔만을 보며 드라마에 몰입했다. 샤오잔의 맑은 눈망울과 토끼같은 입, 환한 미소까지 <진정령>은 내게 샤오잔이 아니면 좀비 고비를 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무협 연기자들에 비해 샤오잔은 무척 가녀린 체형을 가지고 있다. 서정계의 탄탄한 근육질 몸매에 비하면 무공을 할 때에도 날아갈까 걱정이 되지만 날렵한 동작으로 단단함을 메운다. 그래서 <진정령>이나 <투라대륙>에서처럼 초능력을 쓰는 역할이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가 무거운 칼을 들고 바위를 둘로 가르는 역할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캐릭터에 한계가 있을 수는 있다만 잘 하는 걸 하면 되지, 지금 당장 욕심내지 않아도 좋다. 


‘14억 유전자의 기적’라는 찬사를 얻을 만큼 중국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얻는 미남 배우인데, 특히 나는 그의 입모양을 좋아한다. 토끼처럼 귀엽기도 한데, 특히 입을 앙 다물며 상대방을 응시할 때의 다정함이 좋다. 훠젠화(곽건화)와 쉬정시(서정계)가 기본 표정에 도도함을 지니고 있다면 샤오잔은 선함을 지녀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벌써 착해질 준비가 된다. 그가 진짜로 음흉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냥 믿고 싶어 진달까? 무장해제란 샤오잔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의 황제 폐하>에서는 좀 교묘한 악역으로 등장하는데도 샤오잔에게 이입을 하게 되니 드라마로 보자면 실패인데, 팬으로 보자면 또 드문 악역이니 어떻게 나와도 샤오잔으로 가치있다. 그가 연기를 못 한다는 건 결코 아니다. 모든 배역에 모두 잘 어울리는 배우는 흔치 않다. 그가 잘 어울리는 배역에 다른 사람의 대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샤오잔은 뭔들’이라는 이런 태도로 열세 살이나 어린 배우를 앓는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좀 양심이 없어보이지만, 그게 바로 샤오잔의 능력이 아니겠냐며 배우를 치켜세워본다. 청소년들과 달리 요즘 드라마의 주연 배우들을 보면 어느새 아들딸 같은 마음이 들어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고장극을 더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고장극에서는 나이에 비해 뛰어난 무공을 가진 경우가 많아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우니까. 그래서 고장극을 많이 찍어주는 샤오잔에게 빠지는 모양이다. 샤오잔이 제 나이로 등장하는 현대극으로 샤오잔을 처음 만났다면 지금처럼 앓지는 않았을 것 같다. 최근 <옥골요>에서는 드디어 스승님으로도 나오니 하! 다시 한 번 앓아야 할 것 같구나! 하지만 문득, 이젠 샤오잔이라면 현대물을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이미 빠질대로 빠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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