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뭐든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횸흄 Dec 07. 2021

[생각일기]눈물 많던 어린 나는 어디에

 '천장지구'였던가 '첨밀밀'이었던가 라스트 신을 보며 나는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거의 다 써가며 울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마음이었는데 내 옆의 동생은 한심하다는 듯이 "언니, 저거 다 가짜야! "라며 분위기를 깼다. 

 

 늘 그랬다. 동생은 드라마 보기를 돌 같이 보았고, 드라마 속 인물이 아닌 배우 최ㅇㅇ으로 볼 뿐이었다. 드라마 밖의 카메라 움직임과 스탭들의 시선을 먼저 느꼈다. 뉴스를 보다가도 우는 내가 저 보기엔 한심하고 안 되었던지 매번 궁금하지 않은 화면 밖의 현실을 내게 풀어냈다. 


 그런 동생이 프로포즈를 공연장 무대 위에서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도리어 나는 그런 짓 따위는 용납이 안 되는 사람이 되었는데 동생은 로맨틱한 장면의 여주인공이 된 것도 모자라 그것에 무척 감동을 받아 있었다. 진심으로 나는 하나도 부럽지 않았지만 황홀한 표정의 동생과 의기양양한 예비 제부를 배려해서 감동받은 척은 했다. 아마 티가 났으리라.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화수분이었던 소녀는 가난한 집안에서 불화하는 부모 아래 사는 장녀라는 무게를 짊어지느라 제 마음을 누르고 눌러 어느샌가 평정심의 달인이 되었고, 시니컬하기가 언니도 잡아먹을 듯 씩씩했던 소녀는 자신을 돌보아줄 가족을 가족 밖에서 찾느라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한들 우리의 감정이 보통 사람의 범위 밖으로 벗어나 내가 냉혈한이 되고 동생이 울보가 되지는 않았으니 남들 보기엔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보일 터였다. 하지만 우리 둘은 느낀다. 무언가가 있어 우리 둘을 이렇게 변하게 했구나.


무언가는 끊임없이 형태를 바꿔가며 내 마음을 부수고, 부서진 마음을 언제부턴가 줍지 않아 내 마음은 점점 뭉툭해졌다. 내 몸 안에는 마음의 연필깎이가 있지 않아 뭉툭해진 마음은 자력으로 깎아지질 않는다. 그럴 때 원래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 툭 건드려주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두루마리 휴지를 끌어안고 울던 내가 나타나곤 한다. 그렇게 한 바탕 내 마음을 그대로 들켜버린 날이 되면 나는 도리어 마음이 편하다. 나의 원래를 찾아온 느낌이랄까? 


 나이가 들어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단단하고 평온하다고 느낀다. 그런 내 모습은 내가 어릴 적 그렇게 되고 싶었던 모습 중의 하나이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한 것은 그것이 나의 본래는 아니기 때문이다. 눈물이 많아 친구와 다툴 때에도 눈물이 먼저 나와 상대를 더 화나게 했던, 그래서 집에 와선 먼저 울지 않으려고 벽을 보고 말싸움 연습을 해야 했던 내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된 것도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가끔은 그 여린 날의 내가 그립다. 그것을 꺼내게 해주는 사람 역시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일기]다시쓰는 매일독서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