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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건너 Jul 19. 2023

파안대소 박장대소

   얼굴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웃는다는 뜻의 파안대소(破顔大笑), 내 생에 이렇게 웃어본 날이 있었던가. 나는 오늘 그렇게 웃었다.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다는 뜻의 박장대소(拍掌大笑), 농장의 이웃들은 오늘 그렇게 웃었다.

 

  로컬푸드 직매장에 처음 양배추 한 포기를 내 볼 요량으로 밭으로 나갔다. 진초록 양배추의 아랫잎이 넓은 양손을 빳빳하게 펼친 채 동그랗게 붙어 뭉쳐있는 애기 잎들을 받치고 있다. 한 포기 뽑았다. 요즘은 1인이나 2인 가족시대니 큰 포기의 양배추를 한 집에서 다 가져가긴 부담스러울 것이므로  그것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사 등분으로 쪼갰다. 그러자 그 안에 숨어있던 이슬이 도마 위로 흘렀다. 포장하기 위해 한쪽씩 손으로 들자 이슬이 후드득 떨어졌다. 네 쪽의 양배추를 랩으로 팽팽하게 싸서 사각바구니에 담았다.


  이른 시간에 매장에 도착하니 승용차들이 여러 대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손수 지은 농산물을 여기에 내려고 오는 텃밭 농부들이다. 나는 사무실 입구에 있는 키오스크 쪽으로 갔다. 나보다 먼저 도착해 앞에서 키오스크 화면에 손가락을  터치하고 있는 부지런한 농부들은 손놀림도 빠르다. “띠띠띠띠 촤르르 촤르르..” 나는 차례를 기다리면서 그들이 가져온 가방과 바구니를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여러 종류의 야채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내 차례가 돼 나의 이름을 치려고 하니 화면에 이름 넣는 곳이 보이질 않는다. 어떻게 하는 건가. 처음이니 모르는 게 흉은 아니다. 저쪽에서 이리저리 다니며 바삐 뭔가를 하다가 내 곁을 지는 여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녀의 도움으로 내 이름을 넣고 ‘양배추’를 클릭했다. ‘개수’ 란엔 네 개라는 표시인 숫자 4를, 한 개당 가격 란엔 1300원을 클릭하고 ‘확인’을 누르니 주르르르... 네 개의 가격 스티커가 나왔다.  그것을 빼서 포장한 표면에 각각 한  개씩 붙였다.


   매장으로 들어갔다. 다른 텃밭 농부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온 채소들을 매 대에 진열하고 있다. 내 것은 어디다 놓아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직원이 정해준 곳에 네 쪽의 양배추를 차분히 올려놓았다. 등고선 모양인 단면의 싱싱한 결이 앞에서 보이도록. 그리고 기원했다. 이 양배추와 인연이 되는 가족의 건강을. 한 편 의구심도 일었다. 정말 판매가 될까?


   농장으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휴대폰에 문자가 떴다. ‘로컬푸드 매출 양배추 1개 판매금액 1300원’ 농막 안에서 고춧잎을 다듬다가 문자를 확인하고 놀라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고 빠른 걸음으로 이웃 농장으로 갔다. 그대들이여 이 첫 판매의 기분을 아는가. 그들에게 휴대폰에 떠있는 판매 문자를 보여주며 다녔다. 그들이 문자를 들여다보곤 손뼉을 치며 크게 웃는다. 겨우 한쪽 팔고서 이 난리냐며. 비록 적은 양일지언정 유기농이라는 자부심으로  일구어낸 농산물이 누군가의 손에 처음 들어갔다는 이 신비함을 그들은 이해 못 하는 모양이다. 가족들에겐 이 기쁜 소식을 문자로 알렸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이걸 사간 이는 누구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문자가 떴다. 이번엔 한꺼번에 두 개가 나갔다는 소식이다. 나는 더 궁금해졌다. 어떤 이가 두 쪽이나 사갔을까.


   시간이 꽤 지나 오후가 됐는데 매장에서 더는 소식이 없다. 하나는 재고로 남나 보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자꾸 문자를 확인했다. 오후가 지나저녁이  돼 가는데 드디어 문자가 떴다. 한 개가 팔렸단다. 완판이다. 나는 그때 마침 우리 농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김 여사에게 양배추가 다 팔렸다고 파안대소하며 소리쳤다. 그녀가 박장대소한다. 완판이래야 돈이 얼마나 된다고, 그거 팔아 어디 밥이나 먹고살겠냐며. 나는 다음엔 두 포기 뽑아 여덟 쪽 내서 팔 거라고 소리치며 웃었고, 그녀는 그거 다 팔리면  매상액이 오늘의 두 배가 되겠다고 손뼉 치며 웃었다. 우리의 웃음을 보려고 아직 잠자러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여름 해도 같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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