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선 철이 없어서, 나이 들어선 고집으로. 육십여 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지은 죄가 많다.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거친 언어는 고착화된 지 오래, 뽑아내려 흔들어도 뿌리가 깊어 요지부동이다. 땅을 갈아 씨앗을 뿌리 듯 마음 밭을 갈아엎고 좋은 말의 씨를 뿌려 새싹을 틔워야 함이 시급하다.
비가 내리고 난 지난 주말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세 여인의 아침 걷기 운동에 나도 합류했다. “비가 이쁘게 내렸어요.” 걸으며 한 여인이 말했다. 그녀들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중얼거렸다. ‘비가 이쁘게 내렸어요.’ 그리고 이 고운 말의 씨앗을 마음밭에 뿌렸다.
더 걷다가 한 여인이 어느 밭 앞에서 쪼그려 앉더니 여기 오갈 때마다 얘 목에 줄이 이렇게 바짝 감겨 있는 게 마음 쓰였다며 줄을 느슨하게 풀어주곤 이제 숨 편히 쉬며 잘 크라고 말하곤 일어선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명에 대한 연민의 씨를 가슴에 심는다.
더 걸어 나가 강을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느 집 텃밭에서 옥수수 잎들이 바람에 수선거린다. 한 여인이 말했다. 얘들이 비를 마시더니 위로 잡아당긴 것처럼 갑자기 키가 자랐다고. 식물에 대한 의인화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 여인들이 실은 진정한 작가다. 나도 식물의 입장이 되어보는 시선을 마음에 심는다.
그녀들과 헤어져 농막으로 들어오니 옆 농장 최사장과 남편이 차를 마시고 있다. 그들의 대화에도 귀를 열어본다. 남편이 아까 한 여인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한다. “이번 비는 이쁘게 내렸시유.” 몸집 크고 다소 거친 성정의 최사장이 대답한다. “어, 약비여!” 발화되는 말들이 모두 곱다.
최사장이 이제 일 시작해야겠다며 일어나 나가다가 여기 싹이 나왔다고 알려준다. 나는 깜짝 놀라 쫓아나갔다. 장독대 옆에 심어놓고 싹 나기를 기다리다 포기했던 생강 싹이 어느새 머리를 길게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