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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건너 Jun 05. 2023

 참견

   김여사가 다가와 친절을 베풀 때 앞으로 그녀의 참견도 감수해야 할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나는 손끝이 야무지질 못하다. 그러니 손끝 요령이 나와는 반대인 남편 마음에 내가 돕는 농사일이 마음에 찰 리 없다. 그가 작물 사이로 나있는 풀들을 매 줄 때 키가 커 있는 풀은 내가 먼저 제거해 주겠다고 그의 한 발 앞에서 힘껏 매며 갔다. 그에 대한 배려였다. 그러나 그가 놀라며 그냥 두라고 했다. 그렇게 호미로  땅을 찍어대면 흙이 다친다고.  

   고추모종이 어느 정도 컸을 때 바람에 흔들리는 고추 대를 더 센 바람이 불어도 부러지지 말라고 옆에 박아놓은 금속지지대에 그가 끈으로 묶어주고 있었다. 나도 그의 곁에서 그가 하는 대로 따라 했다. 그는 그렇게 꽉 묶으면 안 된다며 그냥 두라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 더했다. 두 번 일하게 만들지 말고 놔두라고. 그가 하는 밭일에 내가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건 잘 된 일이기도 했다. 햇볕을 조금만 쬐어도 가려워지는 피부 알레르기로 고생 안 해도 되고 농막 안에서도 할 일이 많으니까. 야채를 다듬고 글 쓰는 일만으로도 바쁘다. 나는 안에서 그는 밖에서, 분업은 자연스레 정착되었다.

   

이러저러한 사정을 모르는 옆 농장 김여사는 내가 이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남편을 밖에서 혼자 일하게 두고 나는 안에서 쉬기만 하는 철부지 여인으로 생각한 듯했다. 하루는 그녀가 우리 밭으로 들어와 나를 불렀다. 힘든 일이야 남자가 하더라도 고추 곁순 따주는 일 정도는 여자가 해야 하지 않느냐며 그녀는 순 따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녀의 설명대로 한들 남편에게 두 번 일하게 하지 말고 놔두라는 소리만 들을 게 뻔해 그녀의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 단지 이웃일 뿐인 그녀에게 나도 저 안에선 바쁘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다 등의 설명을 구구히 하며 이해를 구해야 할 이유도 없어서 참견하고 떠나는 그녀의 등 뒤에 대고 눈만 흘겼다.

   

더덕 잎이 울타리를 감으며 올라가고 있다. 상추에 향 좋은 더덕 순을 넣어 먹기 위해 따려는 순간 “또 밟네 또 밟어” 남편이 소리쳤다. 더덕 순을 향해 뻗친 손이 그곳에 닿질 않자 한 발을 내 디뎌 막 올라오고 있는 도라지 싹들을 내가 밟고 있었다. 신고 있는 신발은 내 발보다 크고 넓은 남편 슬리퍼였다. 울타리 너머에서 풀을 뽑고 있던  김여사 남편이 그렇게 막 밟으면 나오고 있는 싹이 숨을 못 쉬게 돼 죽는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씨앗이 작을수록 땅을 밀고 올라오는 힘이 약하단다. 먼지만큼 작은 도라지 씨앗이 이제 막 발아했는데 그렇게 사정없이 밟아버리면 죽는다는 훈수도 덧붙였다. 옳지 않은 말에는 무심할 수 있으나 옳은 충고엔 속이 아프다.  

   

   남편의 허리가 또 말썽이다. 작년에 비해 호전이 늦고 있다. 비가 내리는데 그는 우비를 입고 허리를 끌다시피 하며 밭을 매고 있었다. 그에게 하지 말라고 해야 소용없는 걸 알기에 나는 말리지 않고 농막 안에 있었다. 김여사가 우리 밭으로 들어와 또 나를 불렀다. 그녀는 고추 순이라도 이렇게 따주면 허리 아픈 남편이 얼마나 감동하겠냐며 또 시범을 보였다. 엄마가 딸을, 언니가 동생을 달래듯 하면서. 교대로 해대는 저 집 부부 참견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저들의 레이더는 왜 나만 주시하는가.

   남편의 허리는 정말 걱정이었다.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긴 해야 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났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듯 농사꾼도 애초부터 타고나진 않았으니 나도 배우면 된다. 얼굴에 썬 크림을 바르고 챙 넓고 얼굴에 햇빛을 가리도록 천이 늘어지게 달린 모자를 썼다. 엉덩이 깔개 끈에 양 발을 넣어 뒤로 올려 끼고 나갔다. 먼저 일어나 일을 시작한 남편에게 다가가 고춧잎 곁순은 내가 따볼 테니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Y자로 벌어진 가지를 방아다리라고 하는데 그 아래에서 나온 순을 따주는 거라고, 그는 놔두라 하지 않고 일러주었다. 순을 받치고 있는 넓은 잎 하나를 한 손에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곁에 붙어있는 새 순만 따주라고 했다. 또 막 따지 말고 순을 앞뒤로 살살 몇 번 움직이면 떨어진단다.

   나는 그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몇 고랑 건너왔다. 또 하게 될 그의 참견이 부담스러워 그와 마주 보는 방향이 아니고 그의 등 방향으로 내 등 쪽을 놓고 앉았다. 두 번 일하게 만들까 걱정인 듯 그가 돌아보며 내 등에다 당부의 말을 했다. 순 따준다고 고추 대 껍질까지 벗기지 말라고. 그건 풀 맬 때 흙이 호미에 다친다는 말과 똑같은 모순이다. 순을 떼면서  순이 붙어있는 가지를 벗기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그가 일러준 대로 해보니 어렵진 않았다. 순을 앞뒤로 살살 움직이니 잘 떨어졌다. 따놓은 아가 순들은 나물 해 먹기 위해 바구니에 담았다. 긴 줄을 거의 마쳐갈 무렵 뒤에서 그림자 무게만큼의 인기척이 감지돼 몸을 돌렸다. 그가 자신의 한쪽 허리를 손으로 잡고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잘하네!” 나는 몇 나무 가지 껍질을 벗긴 건 고백하지 않았다. 뒤에도 눈이 달린 그는 이미 그것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한 줄을 다 끝내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니 아래가 깔끔해져 일렬로 서 있는 고추대가 보기 좋았다.

   

    해가 길어지니 아침 해도 일찍 찾아온다. 밖이 훤해있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청랑한 아침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김여사가 그녀의 집 쪽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녀가 또 할 참견이 미리 불편해져 몸을 얼른 돌려 들어오는데 그녀가 밭 입구 울타리에서 나를 불렀다. 완두콩 콩 주머니 위를 씌우고 있는 초록색 꽃 갓이 누렇게 말랐으니 수확을 해도 되겠단다. 콩 주머니들이 진작부터 주렁주렁 달린 것만 신기했지 수확 때가 된 줄은 모르고 있었다. 나는 반가움에 뛰쳐나갔다. 그녀가 콩 주머니 한 개를 따서 껍질을 쪼개 벌려 보였다. 기다란 초록 방에서 아가 콩들이 한 줄로 방을 꽉 채우고 앉아 웃고 있었다. 나는 농막으로 뛰어 들어가 바구니를 들고 나왔다. 그녀가 일러준 대로 꽃 갓이 누렇게 말라 있는 콩들을 빠르게 따서 바구니에 담는데 그녀가 소리쳤다. 그렇게 따면 가지가 다 부러진다고. 바구니는 내려놓고 한 손으로 가지를 잡아주고 다른 손으로 찬찬히 따라고 얘기하는 그녀의 손엔 이미 내가 따면서 부러뜨린 콩 줄기가 들려있었다. 허리 잘린 콩줄기를 보며 놀랐지만 그녀의 참견이 즐거웠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밭길 따라 혼자 산책을 하는데 고추 이랑과 완두콩만 눈에 들어왔다. 그곳을 지나며 "이 집은 방아다리 아래 순을 여태 안 따줬네, 곁순이 수북하구먼." "아이고 아가야 거기 막 밟으면 안 된다, 애기 싹들이 숨을 못 쉬거든."  "아니 이 집은 콩갓이 다 말라있구먼 뭐 하느라 여태 안 따주고 있나." 내가 그들을 향해 참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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