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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건너 May 22. 2023

                   초록 시인

   “참깨 씨를 한 두 톨씩 넣어선 안 돼. 얘들이 외로워서 죽거든.” 주말에 농장을 방문하신 남편의 매형님이 한 말이다.

   씨를 뿌리고도 2주가 지나도록 싹 한 잎 나오지 않는 깻두둑을 갈아엎고 그의 현장 지도를 받으며 깨를 다시 넣었다. 엄지와 검지로 여러 알을 잡고서.

   “이렇게 많이씩 넣어줘야 속에서 지들끼리 영차영차 협동하고 서로 먼저 나가려고 경쟁도 하면서 사북 사북 일어나지. 이제 삼일만 있으면 나올 거여.”

   깨 톨 떨구듯 떨구어 주신 매형님의 초록 언어가 정말 삼일 만에 사북 사북 싹으로 올라오고 있다.

    날 저녁 무렵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저 고춧잎들 시들어 보이지? 가물어서 물 달라고 그러는 게 아니여. 지금 졸려서 자려는 참이여. 자고 일어나 내일 아침이면 쟤들이 개운하다구 할거여 .” 자장가 삼아  재워준 그의 언어로  다음 날 아침 고춧잎들이 싱싱한 얼굴로 살랑대고 있다.

   

평소엔 말없고 무뚝뚝하지만 농사에선 아가 식물의 입장이 되어 일러주는 그는 분명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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