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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건너 May 11. 2023

쑥대밭

   이 년 전 농막 주위로 쑥을 심으려 하자 남편이 반대했다. 밭 전체가 쑥대밭 돼버린다고. 고집이 쑥 뿌리 못지않게 질긴 나는 저 너머 소나무 숲에 가서 호미로 쑥을 뿌리 채 캐다가 남편이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고 있을 때만 그의 뒤쪽에서 몰래몰래 땅에 묻고 흙을 덮었다.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다음 해 쑥은 수북이 올라와 있었고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아침저녁으로 뜯어 형제들과 나누는 일은 또 얼마나 신나던지.

   

   어제 이른 아침 옆 농장 부부싸움 소리에 잠을 깼다. 나가보니 최 사장은 방금 심은 고추 모종에 하얀 비료를 한 줌씩 주고 있고 그의 아내 김여사는 모종이 땅 냄새를 맡으며 적응하도록 삼주 정도는 있다가 비료를 줘야지 지금 주면 저 어린것들이 감당 못해 다 쓰러져 죽는다고 소리 지른다.

   최 사장은 마늘 심을 때도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반대로 했더니 이렇게 잘 자라고 있지 않느냐며 비료주기를 멈추지 않고, 김여사는 마늘밭 옆을 지나가면 썩는 마늘 냄새가 진동하던데 잘 자라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또 큰소리를 던진다. 급기야 최 사장이 어깨에 멘 비료 통을 밭고랑에 내동댕이 치고 밭을 나갔다. 장화를 신은 채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는 최 사장 뒤에 대고 김여사는 집에 가거든 제발 나오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기 민망해 슬며시 안으로 들어왔다. 주말 아침마다 그들과 함께 우리 농막에서 마시는 커피 시간을 결국 갖지 못했다.

   

   오늘 아침엔 우리 밭이 시끄러웠다. 원인은 쑥이었다. 남편이 온통 쑥대밭이 돼버린 땅을 어찌해야 좋으냐고, 농사를 어떻게 지어먹겠냐며 화를 냈다. 나는 농막 주위를 돌며 쑥만 뜯느라 밭 사정은 모르고 있었다. 몸을 돌려 그쪽을 보니 고추모종 심으려고 이랑에 씌워 동그랗게 뚫어놓은 비닐구멍 위로 쑥들이 먼저 얼굴을 내밀어 키득거리고, 이랑과 이랑 사이에도 쑥들이 모여 앉아 수다 떠느라 난리였다.

   지난가을에 심어 키가 커있는 마늘 대도 쑥이 동그랗게 감싸고 있었다. 나는 쑥을 농막 주위로만 심었는데 왜 거기까지 갔는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남편은 씨가 어딘들 못 날아가냐며 한숨 쉬었다. 나는 그에게 미안해져 비닐구멍 위로 올라와 있는 쑥들과, 마늘 대를 싸고 있는 쑥들을 몸을 숙여 자꾸 뽑았고 남편은 쑥 뽑다가 마늘 대까지 뽑지 말고 놔두라며 재차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보니 쑥은 질기고도 뿌리가 깊어 키우는 작물 뿌리까지 휘감아 못살게 구는 모양이었다. 내 죄를 내가 알기에 남편 말을 받아치지 않아 큰소리는 더 이어지지 않았고 김여사 부부를 불러 커피를 같이 마실 수 있었다. 어제 싸웠던 그들의 얼굴은 밝았다.

   

최 사장은 그의 아내 말 대로 고추모종 땅 냄새 맡으라고 비료를 더는 주지 않고 삼 주 동안 가만히 두겠단다. 나는 잘 생각하셨다고 칭찬했다. 그들의 밭 두릅나무에선 쫙쫙 뻗은 줄기 끝에 매달린 잎들이 초록별들처럼 반짝였다. 다른 집 두릅은 처음 나올 때 송이채 한 번 똑 따 먹으면 끝이고 이후엔 벌거벗은 나무만 삐죽이 서있는데 그들의 나무는 야자수를 연상케 할 만큼 어찌 저렇게 울울창창하고 지금까지도 따먹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비결을 알려줬다.

   저 나무는 이제 어른이 됐으니 거름을 많이 주고 처음 순이 나올 때 아무리 많이 달렸어도 한 가지에서 한두 송이씩만 딴단다. 이후에 순이 더 커도 역시 한 가지에서 한두 잎만 따먹는다고 했다.

   김여사가 슬며시 일어나 나가 자기네 밭으로 가더니 두릅을 따기 시작했다. 한 가지에서 한 두 잎만. 잠시 후 그녀는 두릅 잎줄기들을 손아귀에 꽉 차게 잡고 들어와 집에 갈 때 가지고 가라며 탁자 위에 놓아주었다. 그것을 달라고 물어본 건 아닌데 이렇게 따다 주니 미안했고 물어본 걸 잠시 후회했다. 초록줄기들 위에서 초록별들이 빛났다.

   

   농사도 한쪽에서 양보가 있어야만 제대로 되는가 보다. 의견이 다른 둘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팽팽하다면 작물들도 정신 사나워져 어디 무탈하게 자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내가 양보를 해 저 쑥들을 캐내야 할까.

   심기보다 캐내기가 더 어려운 일이 될 텐데. 그보다 저리 깨끗하고, 커도 연한 쑥을 어디 가서 뜯나. 또한 이런 쑥 뜯는 재미를 어찌 포기할까. 나는 고민 끝에 캐내지 않고 그냥 두기로 결정한다.  농장이 쑥대밭좀  됐다고 설마 부부 사이까지 쑥대밭이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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