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신문물을 전하는 콜럼버스
엄마는 한 번도 오마카세를 제대로 발음한 적 없다. 오.. 오… 오카마세, 아세카마, 오마세카…? 어쨌든 그걸 다시 먹어보고 싶어 했다.
일본에 자주 간다는 친구분이 알려주셨다는 ’오마카세‘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주인장 마음대로 요리해 주는 특이한 상차림. 엄마의 첫 오마카세는 50퍼센트 할인가 1인 29,900원짜리 평일 점심 특선이었다. 그것은 일식을 찾아 먹진 않는 장군님의 한식 친화적 입맛을 놀라게 했다. 일식을 좋아하는 딸과 다시 먹어보고 싶은 맛이랬다. 그 말을 듣고 바로 캐치테이블(음식점 검색 및 예약 어플)을 설치했다. 검색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 억새 축제가 열리는 하늘공원 근처일 것. 둘째, 엄마가 처음 먹었던 오마카세보다 높은 가격대일 것. 오마카세 식당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였지만, 엄마의 첫 오마카세가 비교적 저렴한 편이었다는 것은 알았기 때문이다. 마침 나는 인턴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윳돈이 남아있었다. 평소처럼 넉넉지 않은 대학생이었다면 한 끼 식사에 태울 수 없는 돈이 그땐 있었다.
오마카세 어느 지점 가는데?
오마카세 예약을 해뒀다는 말을 듣고 엄마가 던진 질문이다. 문장을 다시 읽어보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오마카세’ 대신 ‘맥도날드’, ‘피자헛’ 등 프랜차이즈 음식점 이름을 넣어보자. 어색함 없이 들어맞는다. 그렇다. 엄마에게 오마카세는 ‘주방장 특선 요리 형식‘이 아니라 지점이 여러 군데인, 주인장 마음대로 요리해 주는 특이한 일식당 이름이었던 것이다. 귀여운 오해에 푸하하,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묘한 감정이 남았다. 비슷한 일이 은근히 있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열풍으로 모두의 일상에 들어온 OTT. 신문이나 우유 구독에 더 익숙한 부모님께 너무 신선한 구독 서비스였다. 당시 나는 신제품을 소개하는 방판 사원처럼 OTT가 무엇인지, 플랫폼마다 차이점은 무엇인지, 부모님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가 어떤 내용인지 설명했다. 거실을 가득 채운 책꽂이들에 밀려 십수 년째 TV를 없앴던 우리 집은 큰 변화를 맞이했다. 모든 노트북으로 여러 OTT를 볼 수 있다. 클릭 한 번만으로 해당 사이트에 바로 접속할 수 있도록 즐겨찾기에 추가해 둔 것은 당연하다. 자동 로그인이 해제되면 동생과 내가 번갈아 가며 원상 복구한다.
내가 전한 신문물 중 엄마가 가장 낯설어했던 것은 PC카톡이었다. 직장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어 익혀야 하는 신기술이었다. 엄마는 카톡을 노트북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나는 그게 엄마에게 아주 고난도라는 현실에 놀랐다. 노트북으로 카카오톡을 설치하는 것부터 로그인하는 방법, ‘나와의 채팅방’을 활용하는 법, 폰으로 찍은 사진을 PC카톡으로 다운로드하는 법 등 일장 강의를 했다. 초저녁에 시작해 한밤중까지 무한 설명과 실습이 반복됐다. 그러고도 막상 직장에 가면 까먹을까 봐 강의 노트를 만들어 갤러리에 넣어준 다음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넷플릭스가 무엇인지부터 오마카세가 정확히 어떤 뜻인지. 새로운 개념과 신문물을 전하는 나는 종종 엄마 아빠의 콜럼버스가 된다. 부모님은 이제 모험을 떠나기보단 익숙한 대륙에 머물고 있다. 나는 부모님이 갔던 것보다 더 넓은 곳을 항해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내 항해선에는 내겐 익숙한 것일지라도 부모님께는 전혀 보지 못한 것들이 가득하다.
+.
오마카세를 먹으며 나눴던 대화 중 하나.
윤돌프 : 요즘 백화점은 어때? (엄마의 직장은 백화점이다)
고장군 : 조금만 추워지면 히터 틀고, 더우면 에어컨 틀고. 백화점은 완전 개꿀이지~
윤돌프 :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고장군 : 누구긴. 너네한테 배웠지 :->
->애기들 앞에서 말 함부로 하는 것 아니라더니. 이젠 슬슬 반대가 되어감을 느낀다.
나의 첫 오마카세이자 엄마의 두 번째 오마카세, ‘이요이요스시’
스시 종류가 다양하고 식사 속도를 잘 맞춰주신다.
런치는 1인 5만 원, 디너는 1인 8만 원. 가격대가 많이 부담스럽지 않은 편인데 비해 만족도가 높다.
-부모님께 신문물을 부지런히 물어다 드리자. “자식 낳길 잘했다” 혹은 “우리 딸 아니면 이렇게 좋은 것도 몰랐겠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무언갈 알려주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디고 귀찮을 수 있다. 속이 답답해지는 순간이 오면 어린 우리에게 같은 단어를 오백번은 알려주셨을 부모님을 생각하자.
-부모님과의 첫 오마카세는 큰 맘먹고 결제하자. 결제 금액만큼이나 리액션이 크고, 두고두고 좋아하시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