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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관계를 되돌아보며

관계 소홀은 나이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by 여문 글지기

어제 지인의 아들 결혼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뛰었다. 두 달 전에 카카오톡으로 청첩장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참석 여부를 고민했었는데, 일정에서 그냥 사라졌다. 직장생활을 할 때만 하더라도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었다. 청첩장을 받고서 채팅창으로나마 축하 인사를 미리 한 것이 한 가닥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퇴직 직후에는 서로 안부도 묻고, 지인의 회사 전시회 초대로 참석하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뜸해졌고, 5년이 지금은 관심사에서도 멀어졌다. 이제는 연간 전시회 소식도 매스컴을 통하여 알게 되었고, 초대도 없었으며, 당연히 참석해서 대면할 계획도 없다. 몸이 멀어졌기로 이렇게까지 빠르게 달라지는 게 인지상정인가.

내 아들 둘이 이미 결혼 적령기(우리 부부의 기준)를 이미 넘어서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에 품앗이로 참석하는 것도 시들해졌다. 평소 왕래도 없다가 경조사에 불쑥 연락하는 것은 멋쩍은 생각이 있다. 이제 우리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상당히 멀리 왔고, 돌아다 보아도 서로가 지나온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냥 소식에만 만족하자.


지난주에 월례 모임이 한 건 취소되었다. 4년 전에 교육과정에서 만나서 줄곧 모임을 이어왔고, 이번 달은 추석 연휴가 길어서 모임 일자도 잡기가 쉽지 않았는데 결국 못하게 되었다. 각자의 사정이 여의치 못했던 것 같다. 대표님이 다양하게 노력했지만 결국 다음 달에 보는 것으로 하자며 아쉬움을 달랬다. 대표님이 마음고생이 보이는 듯하다.

이렇듯 내가 마음이 멀어지거나, 나는 마음에 두고 있으나 구성원들의 우선순위가 낮아서 자주 보지 못하는 사회관계가 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마트폰 덕분에 서로의 안부나마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니, 어쩌면 그 때문에 모임의 필요성을 덜 느끼고, 대리 만족으로 자신을 달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인생 선배들의 강연을 듣다 보면, 정년퇴직 후에 관계를 정리하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전화번호부를 정리하고, 경조사에도 참석 기준을 새롭게 하라고 한다. 수입은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체면치레로 인한 경조사비의 지출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공감이 가지만 한편으로는 세월이 주는 허탈감까지 덜어주지는 못한다.

수필가 유안진 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가 생각난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후략)

내가 그런 친구가 될 수는 없을까? 허물없는 교감,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평생 지속될 수 있는 아름다운 인연으로 기억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은 나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부터 변하고, 조금 더 배려할 수 있도록 마음에 여유 공간을 남겨 두어야 한다. 매일 만나고 헤어지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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