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다.
등반사고가 가끔 발생하는데, 오르막보다는 내리막길에서 더 많은 사고가 난다고 한다. 힘들기는 분명 오르막길이 더할 텐데 왜 이런 결과가 생길까?
이 방면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분석해 놓은 글을 보면서 수긍이 가는 부분이 많다. 목표에 도달했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느슨해지고, 몸까지 긴장이 풀린 결과라는 것이다.
물론 체력적인 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 등산길에서 힘을 모두 소진하거나, 자신의 페이스를 넘으면 하산길이 오히려 힘들고 위험해질 수 있다. 술이라는 변수도 있다. 술이 주는 위험성을 모두 알지만, ‘나는 아닐 것이다.’라는 안일함이 과음을 불러올 수 있고, 과음은 아니더라도 긴장감과 주의력을 떨어뜨리는데 한몫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분명히 다른 길이다. ‘등산’이라 함은 오르기 시작한 시점에 안전하게 복귀했을 때 마무리되는 것이다. 정상지점에 도달한 것이 끝은 아니다.
목표지점은 도착한 즉시 다음 지점으로의 시작점이 된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너무 무리하거나, 목표지점 도착에 과도하게 심취하다 보면 내리막길의 위험성을 간과하기 쉽고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떤 분이 강의에서 말했다.
“나는 지금 내려가는 중입니다. 오르면서 모질게 대했던 사람들이 생각나서 몹시 조심스럽습니다. 마지막이 좋기 위해서는 내리막길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의 길을 새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오세영 시인은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 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라고 하였다.
내 인생의 끝을 알 수 없으니, 내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단지 평균적으로 생각한다면 대략 8월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가 정상에 오르기는 했던가, 지금 가는 길이 내려가는 길이 맞는가 자문해 본다.
체력적으로는 정점을 지났음을 느낀다. 이제는 뛰는 것이 살짝 두렵고, 땀 흘리며 뛰는 젊은이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보고 있는 나를 보면서 느낀다. 나름 빠르게 걷는데 앞질러 가는 발걸음을 보면서 또 느낀다. 산을 오르기보다 둘레길 걷기를 당연하게 여기게 되면서 청춘이 아님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8월은 “한 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 산을 생각하는 달”이도 하다.
인생의 정상은 체력에만 있지는 않다. 체력이 정점에 이르렀더라도 정신적인 면에서 ‘익어감’을 향하여 걸어갈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늦더위로 단풍시절이 늦어지고 있지만 녹음과는 다른 감동을 줄 것이다.
나의 열정을 조금 더하면 녹음 후에 맞게 될 단풍이 더 곱게 될 수 있다.
나는 아직 내려가고 있지 않다. 여러 갈래의 길에서 조금씩의 부침은 있었지만, 어떤 길에서는 정점을 지났을지도 모르지만, 나의 길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새로운 날이고 나는 또 출발점에 선다.
내가 가는 길을 멈추고, 지나온 길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비로소 나의 내리막은 시작된다. 내려가는 길의 출발점은 내가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