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문 글지기 May 21. 2023

반려식물과 함께하기

말없이 미소 짓게 하는 친구들

오월에 접어드니 아침에도 기온이 크게 내려가지 않는다. 기상예보에 미세먼지 주의보만 없으면 일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일은 안방과 거실의 창문을 모두 여는 것이다. 이제는 집안의 나무들이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니 다행스럽다. 아침 공기의 싱그러움을 느끼며 잠을 떨친다.


창가에 모여 있는 반려식물 친구들과 하루 첫 대면 시간이기도 하다. 미세한 변화지만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 저절로 미소 짓게 한다. 20년 가까이 같이 지내는 친구들도 있고 만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친구도 있다. 


가장 오래된 친구는 처가에서 분양해 와서 번성하고 있는 관음죽이고, 가장 근래에 온 친구는 아들의 직장상사가 나누어준 서양난이다.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모두 소중한 친구들이고 언제 보아도 기분 좋은 벗들이다. 많은 것이 좋지만 열 개 정도의 지금에 만족하고, 더 늘리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열 개 남짓한 화분만 가지고 있지만 한 때는 상당한 수의 화분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다. 이사 때문에 정리하기도 하고, 계절성 친구들이어서 한 해만에 헤어진 친구들도 많다. 이제는 늘리기보다 유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간다. 욕심은 서로에게 해롭다.


지금도 시장 입구에서 팔고 있는 좌판의 꽃과 모종들에 눈길이 간다. 때로는 상당시간 머물면서 사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집안에 들일 수 있는 공간의 크기와 그 식물들에게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되기를 바라면서 매번 눈 호강만 하고 발길을 돌리곤 한다.


여러해살이 식물이면서도 겨울을 지나고 나서 봄에 다시 싹이 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추위에 강하다고 하지만 화분에서 견디기에는 버거웠나 보다. 오랫동안 기다려도 싹이 나오지 않아 뒤져보면 썩은 뿌리만 나올 때의 상실감은 매우 크다.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 경우도 있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봄이면 노란 꽃을 피우던 천년초도 그 중 하나다. 작은 뿌리 하나가 매년 늘어나서 열 개가 넘는 화분이 되었는데, 베란다 방수 공사 때문에 둘 곳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말았다. 


공사가 끝나고 화분이 있던 자리를 빈 공간을 보면 선인장의 외관에 어울리지 않은 고운 빛의 꽃과 왕성한 번식력이 생각난다. 겨울동안 얼음으로 변해있던 몸체에서 어떻게 저렇게 연하고 고운 꽃과 새줄기가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였다. 언젠가 여건이 허락된다면 다시 데려오고 싶다.


반려식물들과 함께하면서 당연한 주말 일과는 물주기다. 다른 식구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리지 혼자서 물을 준다. 매주 주기를 원하는 친구들도 있고, 한 달에 한 번 주면 만족하는 친구들도 있다. 과유불급의 작은 이치를 여기서도 배운다.


요즈음은 친절하신 분들 덕분에 유튜브에서 쉽게 식물들의 물주는 주기와 방법을 알 수 있다. 오래 같이 하지 못한 친구들 중에는 물주기를 잘못하여 일찍 헤어진 경우도 있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앞서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늘 조심한다. 덕분에 근래에는 물주기 실수는 없었고 단지 창문의 일조량이 적은 적이 미안한 점이다. 


식물들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 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인산 벤자민 한그루가 잎이 말리면서 시들하더니, 지난해에는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잎에서 윤이 나고 새 가지를 뻗어내더니, 올 봄에도 열심히 새 잎을 만들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처가에서 분양받아온 관음죽은 세 개의 화분으로 늘어나더니, 그 중 하나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보는 사람들에게 행운을 준다는 꽃을 피우기도 하였다. 옅은 분홍빛의 꽃은 막상 보기 전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었다. 다시 꽃을 기다리고 있지만 언제 보여줄지는 알 수 없다.


스투키는 두툼한 모습이 좋아서 들였는데, 지금은 두 줄기만 남고 모두 없어졌다. 빈자리는 그 자손들이 가늘고 약한 모습으로 대신하고 있다. 이 모습이 맞는 것인지, 잘못 관리하여 이렇게 되었는지 애써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올해도 새 줄기가 올라오고 있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좋기 때문이다. 


어제 TV에서 앵무새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들의 모임을 보았다. 앵무새라고 하였지만 각자 키우는 새들의 모습은 아주 다양하였다. 그 중 한사람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동물들은 수명이 너무 짧아서 헤어질 때 힘든데, 앵무새는 80년까지 살기 때문에 그런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나이 드신 분은 손자에게 물려주겠다고 하셨다. 


한 때 하얀 개를 잠깐 키웠었다. 하루 몇 번씩 보면서도 볼 때마다 반겨주는 모습이 아주 사랑스러운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지인에게 넘겨주었다. 그 이후로는 반려동물은 키울 생각을 못하고 있다. 언젠가 소망하는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생각해 보겠지만 지금은 동물보다 식물이 친구로서 훨씬 편하다.


여기 있는 반려식물들도 나의 관리 부실이나 제 운명에 따라 먼저 헤어질 수도 있지만 정성만 들이면 적어도 나보다는 오래 살 것으로 여긴다. 금전으로 환산할 재산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매일을 같이한 친구들을 아들, 손자들에게 인계주고 싶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맞아주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반려식물들, 그 모습만으로도 미소 짓게 만드는 멋진 친구들이다. 도시 생활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의 원천이다. 종류별로 특징들을 더 공부하면서 친구들에 대한 배려를 더하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미가 아니고 일이 되는 독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