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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Aug 05. 2023

소나무 사이 오솔길 걷기

그늘의 고마움은 햇빛이 강할수록 더 느낀다.

여름은 더워야 제격이기는 하지만 요즈음의 더위는 도시생활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온도 자체도 높은데, 건물이 내뿜는 복사열과 아스팔트 도로의 지열은 견디기 어렵다. 다행인 것은 장마가 끝나자 습도가 낮아져 그나마 그늘 속은 더위가 덜하다는 것이다.


휴일의 오후에는 집안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것보다 운동시설에서 주로 보낸다. 책을 읽기에는 나른한 시간대이고, 낮잠이나 TV채널과 씨름하는 것은 왠지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을 할 때나, 하고 나면 좀 더 건강 해졌겠지 하면서 스스로 뿌듯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여름철에는 운동시설로 오가는 것이 문제다.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의 시설에 차를 이용한다는 것은 운동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아서 주로 걸어서 다니는데, 한 여름의 햇빛은 나서는 것 자체를 망설이게 만든다. 핸드폰을 울리는 폭염 경고 문자는 불안감도 가지게 한다.


운동을 마치고 복귀할 때는 그래도 그늘이 많아서 견딜만한데 가장 온도가 높은 시간대에 출발하는 것은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을 다잡으며 집을 나선다. 아직은 더위를 핑계로 물러날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오늘은 이동하는 경로를 조금 바꾸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기는 하지만 집 뒤의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어차피 운동하러 가는 길인데, 조금 더 걸어도 문제 될 것이 없고, 어차피 흘릴 땀이라면 잠깐이지만 산길이 좋을 것이다.


사실 숲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멋쩍은 뒷동산이고, 비포장 오솔길이기는 하지만 걷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손질되어 있는 길이다. 그래도 오늘의 선택이 옳았다고 스스로 즐거워하면서 걷기에는 충분하였다. 오솔길은 전체가 그늘이어서 햇살은 전혀 따갑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솔길을 걸을 수 있는 여건이 주위에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자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오늘의 오솔길은 오롯이 나 혼자 차지가 되었다.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덤이다.


도심의 한편에 이런 자그마한 동산이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다. 어떻게 그 거센 개발의 압력을 견디고 남아 있을까? 조금만 표토를 걷어내면 바로 암반이 드러나는 악조건이 오히려 지금의 숲으로 남아있게 만든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주위에 개발의 흔적이 남아있기도 하다. 언젠가 골재를 채취하였던 서쪽의 일부에 지금은 안전조치를 하였지만 산 쪽으로 절벽이 드러나 있다. 골재로 바뀌어 사라진 바위들이 있던 곳은 이제 평평하게 다듬어지고 어린이 놀이터를 조성되어 있다. 


산의 북쪽에는 작은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는데, 그곳 역시 부지를 조성하기 위하여 잘라낸 바위들이 아파트보다 높은 절벽이 되어 속살을 내보이고 있다. 도시에 남아 있는 산은 이렇게 개발의 생채기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그래도 남아 있는 소나무들은 아무 불평 없이 그늘을 제공해 주고, 산들바람을 선사해 주고 있다. 


여기도 물론 개발의 소식들은 들려온다. 지하철역과 인접하여서 역세권 개발지역에 포함된다고 한다. 집값이 올라간다고 하니 반가워해야 할지, 이런 환경을 두고 또 이사를 해야 하는 것을 걱정해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오늘 더위에 이 숲 속 오솔길을 직접 이용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지만, 시간대를 달리하여 이용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또 간접적으로 이 동산을 바라보면서 작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개발을 하더라도 현재 숲인 곳은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기존에 다니던 포장된 도로를 이용하였다. 저녁 바람이 제법 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섯 시가 넘은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집에 들어서니 온몸이 땀으로 가득하여 운동하고 씻고 개운하였던 기분은 허사가 되었다.


그래도 운동은 계속할 것이다. 오가는 길에 다른 즐거움도 찾으면서…

※ 참고로 이 오솔길은 봄철에 개나리와 산벚나무가 만개할 때는 꽃길이 되고, 가을 단풍철에는 소나무 잎으로 덮여서 나름 운치 있는 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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