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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문 글지기 Dec 09. 2023

12월의 개나리꽃을 보면서

만개할 수 없는데 지금 피는 이유는 무엇일까?

달력도 없는 식물은 어떻게 꽃을 피워야 할 시기를 알까? 식물학자가 아니기에 꽃을 피우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의 순리’라고 부르는 것 중의 하나인 다양한 식물들의 개화시기를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식물은 꽃을 피울 시기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하여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을 유전적 정보로 후손들에게 전달한다고 한다. 매년 같아 보이는 현상도 사실 식물 입장에서는 진화의 과정 중에 있을 것이다. 워낙 긴 세월을 거쳐서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인간의 지식체계로는 알기 못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현상은 분명 진화의 과정일 것이다.


그런데 식물 중에서 개나리는 꽃을 피우는 것을 결정하는 메커니즘이 가장 단순하다고 한다. 영하의 추위를 겪고 나서 그저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면 꽃을 피운다고 한다. 12월 들어 갑자기 영상 10도를 넘는 날이 이틀 계속되더니 집 주위에서 개나리꽃을 보게 되었다. 예쁘다는 생각보다는 잘못된 계절에 피어난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개나리에게 꽃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함부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저 꽃들은 필시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만개하지도 못한 채 지고 말 것이다. 봄철에 꺾꽂이를 하여도 잘 살고, 휘묻이를 하여도 금세 뿌리를 내리는데 꽃은 왜 피우는 것일까?


꽃의 분명한 목적은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서울의 봄철을 대표하는 꽃 중의 하나가 되어 주위 산들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가지를 잘라버릴 수도 있고, 군락을 이루도록 할 수도 있는 인간들 주위에서 흔하고 친숙하도록 하여 종을 유지하려는 것도 유전지식에 포함될 것일까?




개나리꽃의 개화에 대한 여러 이유는 모두 젖혀두고 제철에 피지 못하여 끝까지 가지 못하는 안타까움만 지나온 일들과 연관하여 살펴본다.


나는 살아오면서 항상 시기적절하게 대응하였다고 할 수 있을까? 설익은 상태로 덤벼들었다가 실수하여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는 일은 얼마나 많았을까? 섣부를 지식을 재능과 역량이라고 잘못 판단하여 하고자 했던 일을 더디게 하거나 잘못되게 한 일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기대했던 지위에까지 오르지 못하고, 기대했던 성과도 모두 달성하지 못하고 두 번의 퇴직을 경험하였다. 이것은 식물에 비유하자면, 이른 시기에 꽃을 피운 것과는 반대로 피울 시기만 저울질하다가 아예 피워보지도 못하고만 것은 아닌가.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보면, 그 때는 참 열심히 살고 앞만 보면서 전진했는데 막상 목표를 모두 이루지 못했다는 회한(悔恨)도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 과정 중에 나는 적어도 당당했고, 꿈과 희망이 있었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지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여도 좋지 않은 결과로 귀결되었던 그때의 어떤 결정은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가시적인 성과는 얻을 수 없겠지만 그 과정에서 얻었던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은 단지 얻지 못한 그 목표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지만 더 소중한 것이 과정과 주위에 더 많이 있기도 했다.


개나리가 단지 기온의 변화만으로 개화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도 따른다. 여름에 힘들게 만들어둔 꽃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잃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화는 단지 종을 번성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의 하나라고 할 때 쉽게 결정하는 이점(우리가 모르는)도 분명 있을 것이다.


지나온 길에서도 마찬가지다. 섣부른 결정으로 인하여 당장 눈앞의 목표달성은 실패하였더라도, 성급한 성격의 결함을 보완하게 해 주고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여유도 갖게 해 주었다. 이것으로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졌다면 어느 순간의 설익은 사고와 행동이 오히려 이익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경험이 쌓이면서 지금의 결정이 미래에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조금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나중에 이것도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후회하지 말자. 준비하고 도전한다면 바라던 최초 목표와 조금 멀어지더라도 또 다른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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