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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웨이즈 정은미 Jul 26. 2021

라떼는 말이야

내 안의 한계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은미 집 생각보다 못 살더라"


초등학교 6학년 때 일 것이다.

3명이서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옷을 말끔히 위아래 세트로 입거나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항상 양갈래로 땋고 다녔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부터 엄마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있고, 어떨 때는 없었다.

6학년 때는 확실히 엄마는 없었다.

그 자리에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머리는 항상 땋고 학교에 가고 싶었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머리를 땋고 가지 않으면

엄마가 없다는 걸 다른 친구들이 알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당시 일흔쯤 되신 할머니에게 기필코 머리를 땋아달라고 요청했다.







다행히도 친구들은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사교성이 좋았고, 친구들을 리더 하는 쪽이었다.

그렇게 나는 친해진 친구들을 종종 집에 불러 놀기도 했다.


6학년이 되어서 친해진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어 처음 불렀던 것 같다.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랑 집에서 놀고, 며칠 후..

그 친구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했다는 걸 듣게 되었다.


충격이라기보다

그때 처음 그 개념을 알았던 것 같다.

집이 못 산다. 잘 산다.


그런데, 이 말을 지금도 기억하는 거 보면

충격받은 게 아니라고 하지만

받았던 거 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중학교를 올라갔다.

할머니는 늘 신세한탄을 했다.

아빠는 허름한 차림으로 나가 새벽에 나가서 저녁 늦게야 들어왔다.

나는 학교를 갔다.

6살이 어린 내 동생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각자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서로에게 관심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식 전,

교복을 맞추는 게 몇십만 원이 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왠지 아빠에게 미안했다.

물려받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렸다.

원래 교복의 원단이 막 좋지는 않았기에

교복 마이의 팔꿈치가 약간 헤어지고, 빛을 바란 느낌이 있었지만 나는 그걸 입고

학교에 갔다. 참 교복이 정이 안 갔다.

어떻게 못쓰게 되어서, 다시 새 교복을 입고 싶었지만

내 키는 크지 않았고, 어째 넘어지지도 않아

그 빛바랜 마이를 입고 졸업을 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 것이다.

이건 약간 서러웠던 일 같다.

무료급식을 신청했다.

밥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나왔고,

반찬은 거의 없다고 볼 정도였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100% 신고감이다.

급식 값을 아꼈다고 아빠한테 말하면 왠지 좋아하실 것 같았다.

무료급식 먹는 친구들과 같이 더 재밌고 더 맛있는 척하며 먹었던 것 같다.



대학교에 가서 좋았던 것이 내가 내 용돈을 벌어 썼다.

오히려 더 좋았다.

용돈으로 옷도 하나 사입을 때도 있고,

맛있는 걸 먹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은 돈이 정말 하나도 없을 때가 있었다.

입 밖으로 용돈 달라는 소리를 해 본 적이 없어서

결국 천원이 없어, 학교를 못 간 적이 있다.

출석률은 참 좋은 편이라 씁쓸한 순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직장생활을 할 때도

모든 걸 내가 해결해보려고

남녀가 한 층에 있고, 샤워소리도 들리는 고시원에 있어보기도 하고

월급을 모아야 된다는 생각에 창문 없는 방 하나 있는 곳에 살기도 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가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월세가 비싸더라도 안전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집에서 살 것이다.

나의 정신은 돌보지 않았다.

그저 내 상황에 끼어 맞추려고만 했을 뿐.





돈이 없다. 우리 집은 가난하다는 인식이 나를 꽤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가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인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느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A는 돈은 없지만, 어학연수를 갈 거야. 가서 벌면 되지. 내 능력이 어디까지 되나 볼 수 있는 기회야!

B는 돈이 없으니 나는 가면 안 되는 거야. 너 형편을 알아야지.

슬프게도(?) A는 내 남편이고, B는 나 자신이다.

나는 남편에게서 나 자신을 믿는 자신감과 한계가 없는 삶을

7년의 결혼생활 동안 같이 살며 배우고 있다.

처음에는 말을 먼저 뱉는 그가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내가 바뀌어야지 하고, 결심한 때부터

모든 성공과 부에 관한 책은 그걸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다.

마인드부터 바꿔라.

실행을 먼저 하라.

원하는 것을 끌어당겨라.


이 모든 것은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



가난이라는 단어는 돈과 연결된다.

돈이라는 것이 세상의 다가 아니지만

돈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한다.

돈이 없어 서러웠다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능력과 한계에 제한을 두었던 과거가 안타깝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한 나를 바꾸는 방법은

좋은 책을 읽어보고, 긍정적인 사람들을 가까이하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나를 완전히 믿고

상황에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바꾸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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