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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웨이즈 정은미 Sep 12. 2021

샤워를 매일 두번씩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

 "나 씻고 올게."


"나 씻고 올게."는 나 쉬고 올게와 비슷한 의미이다.

아기 돌까지는 거의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복도식 아파트의 21평 아파트에서

주방이 거실이고 거실이 곧 침실이었다.

그 안에서의 유일한 탈출구는 바로 샤워하는 시간이었다.


공식적으로, 10여 분간 물소리와 멍 때리는 시간.


나는 아침, 저녁으로 샤워를 한다.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그게 나는 당연한 거 같이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을 보니 아닌 거 같기도 하다.

씻고 난 후 그 개운함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씻을 때의 그 물소리의 적막함을 더 좋아한다.


 샤워하며 영상 같은 걸 볼까?하고 시도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어떤 권리를 침해당하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이 시간을

굳이 어떤 만들어낸 소리를 집어넣으니

휴식의 샤워가 아닌 일하는 샤워가 되어 버렸다.

하루 이틀 해보고 그만두었다.




샤워는 어떤 의식의 개념도 있다.

나가기 전

공부하기 전

글을 쓰기 전

밥을 먹기 전


 다시 옷장에서 뽀송해진 옷을 입을 때, 살결의 닿는 느낌이 좋다.

뜨거운 공기와 물에서 나와, 시원한 물맛의 최대치를 느끼게 해주는 것도 좋다.

마음까지 리셋되어, 전투력이 발동하는 것도 좋다.





 하루를 바쁘게 살아야지만, 맞다고 생각하며 여태껏 살아왔다.

내 시선에서 허허 거리며, 빈둥거리는 것 같은 사람들을 속으로, 좋지 않게 생각했다.

나의 시선 안에서, 그들은 이 세상에 무임승차를 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하루의 틈만 나면 틈을 주려 한다.

맑은 하늘의 구름모양이 이쁘다는 생각,

푸릇한 여름날의 아이스 커피,

그리고 매일 있는 샤워시간.


이렇게 내 사고가 완전히 바뀐 것은 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이다.

나의 철학과 생각의 전환은 모두 아이를 낳고서이다.

이래서 자식 낳으면 새로 태어난다는 말이 있나 보다.


왜 그런걸까?

내가 틈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샤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더욱 더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틈이 없을 때의 나의 머리는 참 어지럽다.

뒤죽박죽 순서가 없이 이거먼저! 저거먼저! 하고 나에게 외친다.

그것들을 정열시켜 놓아야만 한다.

내가 그것들을 다 소화시키지 못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하나를 제대로 하기 위해 틈이 필요하다.





쉬고 싶다.

뭔가를 계속 벌리는 걸 좋아하는 원래의 나는

오늘은 무슨 일을 벌릴까를

샤워를 하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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