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
어김없이 저녁 준비를 한다.
아이와 낮잠을 함께 자고 일어난 후인지, 나 또한 컨디션이 좋아
흥얼거리며 냉장고를 열고 닫으며, 반찬거리를 보고 있었다.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33개월 된 아들은
엄마가 뭐하나?
어떤 걸 할까? 나를 주시하고 있다.
"로이야 이리 와봐~엄마 밥 만들건대 도와줘~"
"밥?"(쪼르르르르 옆에 와서 털썩 앉는다)
"쌀을 여기에 부어~3번만 붓는 거야~안 흘리게 집중해서 넣어봐~"
20개월 후반쯤이었나? 몰래 쌀통에 가서 바닥에 부어놓고 혼자 좋아하기를 여러 번 했었다.
나는 항상 청소기를 밀고, 며칠씩에 걸쳐 구석에서 나오는 쌀알들을 치우고 또 치웠다.
어느 새부터는 쌀통의 쌀을 다른 통에 넣어보기를 해본다.
아직 힘이 부족한 아이는 다른 통에 넣어보며 또 쌀을 바닥에 흘린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그렇게 쌀 놀이를 하고는
"내가 청소할게~" 하고 고사리 손으로 무거운 청소리를 들고
어설픈 청소를 하고 난 후,
"엄마! 내가 청소했떠~" 하고 내가 하는 행동을 관찰하고 따라 하고 그걸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내가 안 흘리게 넣어라는 말이 꽤나 신경이 쓰인 듯했다.
한번 붓고는 자신감이 떨어졌다.
"엄마~무거워요. 엄마 안돼요"라고 말하길래
"엄마가 도와줄게~ 이~만큼 퍼서 이렇게~이제 한번 더는 로이가 해봐~"
그렇게 로이는 쌀을 펐다. 많이 퍼지는 못했다.
그리고 쌀 씻는 통에 넣는 순간, 어김없이 쌀을 흘렸다.
미안해요
아이는 그 순간 이렇게 말했다.
눈꼬리는 저 밑을 내려가 있었고, 내 눈을 보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아이가 내 눈앞에 있다.
그렇게 나는 "미안해요"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로이야~ 괜찮아. 한번 더 해볼까" 하고 나는 함께 마지막 쌀 붓기를 도와주었다.
"로이야~ 잘했어! 이리 와봐 엄마가 안아줄게~"
포옥 내 품에 안기는 작은 아이.
참 귀엽고, 참 귀엽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지금까지는, 아이의 상황을 일방적으로 알아주는 역할만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배가 고픈지, 쉬를 하고 싶은지, 잠을 자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아이를 보았다.
그렇게 아이는 내 감정을 알아줄만큼 커 있었다.
-엄마도,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될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