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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웨이즈 정은미 Aug 19. 2021

밀크커피 마셔야지

직업을 만든 주부 이야기


밀크커피 마셔야지.


 아이를 등원시키고 오는 길에서 항상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지난 시간 동안 나의 패턴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약간의 비장한 다짐 같은 생각으로


밀크커피를 마셔야지.라고 되뇌긴다.



오늘 아침이다.

나는 오픈한 렌탈스튜디오의 콘셉트를 잡고 있다.

와서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

사업하는 사람의 이야기. 

남자의 이야기.

여자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

30대의 이야기.

40대의 이야기

50대의 이야기.


그들의 원하는 니즈는 참 달랐다.

나와 남편도 항상 의견이 부딪히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오늘도 그 의견을 모아보느라 아침 7시부터 출장 간 남편이랑 한 시간가량의 긴 대화를 했다.

약간은 예민하게 쏘아붙이며 말할 때도 있었고, 흘러내릴 거 같은 눈물을 참고 말할 때도 있었다.

이 모든 걸 남편은 그냥 묵묵히 받아주었다.


당장 내일부터 홍보를 시작할 것인데

모든 걸 다시 바꿔야 되는 건지.

고객들의 불편한 점은 없는지.

어떤 걸 만족스러워하는지.


이런 것들은 보이는 현상인데, 이 속에 들어가 있는 나는

마음의 불안함과 어려움이 뒤섞여 나를 질타하고 있다.

모든 걸 놔 버릴 수 있으면 그냥 놔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순간 들 정도로

때로는 저 밑에까지 내려갈 때도 있다.

어떻게 만든 공간인데,, 이런 생각을 하지?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된다. 


자.. 다시 또 해봐야지..




 그렇게 통화를 하고, 33개월 로이의 등원 준비를 할 차례이다. 

요즘 내가 생각하고 좀 더 신경 쓰는 것이 밥을 먹이는 것과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도통 밥을 잘 먹지 않는 로이가 오랜만에 해준 멸치 주먹밥을 좋아하길래 주먹밥을 만들고, 

혼자 세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옷을 입히려니 잠을 잘 꺼라는 로이를 얼르고 달래어서

간식시간을 넘기려 할 때 등원을 마쳤다.


평소에는 아이 등원이 참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내 걱정을 한편에 묻고 로이를 보고 있는 시간을 보내며

+와 -가 만나 상쇄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떨 때는 육아가 너무 힘들다가도.. 

어떨 때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육아가 편하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한다. 


나는 현재 내 모습을 보고 있지. 나의 발가벗겨진 이면을.

내가 지금 얼마나 어설프고 남들보다 같은 걸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조금이라도 낯선 경험과 환경에 부딪히면  취약해져 버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약간은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마셔야지. 믹스커피를 마셔야지.


 아메리카노는 에너지 장전하고 자! 이제 시작해! 이런 느낌이라면 

믹스커피는 달달한 거 먹으면서 좀 릴랙스 해~하는 느낌이다.


특히 내가 추천하는 밀크커피 마시는 법은

정말로, 모든 에너지(정신적, 육체적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가 

완전히 소진되기 직전에 마시는 밀크커피이다.

그때 마시는 커피는, 마치 오아시스에서 한줄기 물을 찾는 것처럼.

공사현장에서 한껏 먼지를 마시고 먹는 기름진 삼겹살처럼.

최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의 커피는 단언컨대 최고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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