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주고받는 것은 늘 기쁘다

선물한 이의 세상에 초대받는 것 같아서

by 전유니
2020.6.12_7시_30분경_창원.jpg 2020.6.12 저녁 7시 30분경, 장마가 다가오고 있다. 황홀하게 노을지는 멋진 하늘은 아니지만 마음이 편안하니 탁한 하늘을 보아도 행복하다.



책을 선물 받는 것은

선물한 이의 세상에 초대받는 것 같아 늘 기쁘다.

나는 기꺼워하며 포장을 뜯고,

내 공간에 책 부피만큼의 당신을 들인다.


책을 선물하는 것도

나의 일부를 선물하는 것 같아 늘 기쁘다.

당신의 공간에도 내가 책 부피만큼은 자리하기를!


그러니까 누군가와 책을 주고받는 것은 늘 기쁘다.

좋은 글 앞에서 서로를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 같아서.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같은 숨을 쉰다.



본문보다 긴 메모: 기억에 남는 선물 받은 책들 모음


<장 그르니에 - 일상적인 삶>

한 언니(이자 친구)가 아무 날에 짧은 엽서와 함께 이 책을 선물했다.

-너보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는데, 나는 너무 심장이 뛰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흥분된 마음을 누르느라 애썼었어. 이 책이 너에게도 근사한 시간을 남겨 주길!-

언니의 세상과 시절을 선물받은 기분이 들어 얼마나 벅찼는지 모른다.


철학적 신화적 예술적 은유가 가득한 이 책은 사실 내게 쉽진 않다.

그럼에도 질긴 음식을 꼭꼭 씹는 것처럼 내용을 천천히 씹어 읽는다. 아주 조금씩!

그러고 보니 책이 마치 육포 같다.

현재를 살다 지쳐 에너지가 필요하면 이 책을 꺼내들어 조금씩 씹으며

사유의 세상으로 잠시 떠난다.



<유선덕 - 경계의 감정>

한 친구가 내 터전으로 여행을 온 날 이 책을 선물했다.

어머니가 쓴 책이라고 했다.

나는 여전히 나를 다는 모르겠으나, 책을 읽으며

내가 내 감정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은 알았다.


어쨌건 친구는 떠났고

그날 마신 음식과 술은 전부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해 버렸지만

책은 남아 있다. 그래서 책이 좋다.


<구병모 - 버드 스트라이크>

한 동생이 졸업 전시회 날 축하 선물로 이 책을 주었다.

평소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 선물한다고 했다.

책을 건네고 쭈뼛쭈뼛 가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조금 더 유연한 사람이었으면 기쁨을 더 크게 표현했을 텐데.

네가 책을 선물해 주어서 정말 기쁘다고 또렷이 말했을 거다!


<류시화 엮음 - 사랑하라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한 선배(이자 친구)가 새해 기념으로 선물해 준 잠언 시집이다

사실 이 책은 원래부터 아주 좋아해서 가지고 있던 책이다.

이십 대 초반에

형광펜으로 마음에 드는 대목을 줄 그어 가며 이 책을 두 번 세 번 읽었고

살고 싶은 삶의 윤곽을 그렸었다.


이 책이 두 권이 되어 좋다. 한 권은 마음껏 낙서하고 생각을 적으며 읽을 것이고,

나머지 한 권은 깨끗이 오래 간직할 것이다.

또한 낙서가 되어 있지 않으니

누군가에게 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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