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한 이의 세상에 초대받는 것 같아서
책을 선물 받는 것은
선물한 이의 세상에 초대받는 것 같아 늘 기쁘다.
나는 기꺼워하며 포장을 뜯고,
내 공간에 책 부피만큼의 당신을 들인다.
책을 선물하는 것도
나의 일부를 선물하는 것 같아 늘 기쁘다.
당신의 공간에도 내가 책 부피만큼은 자리하기를!
그러니까 누군가와 책을 주고받는 것은 늘 기쁘다.
좋은 글 앞에서 서로를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 같아서.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같은 숨을 쉰다.
본문보다 긴 메모: 기억에 남는 선물 받은 책들 모음
<장 그르니에 - 일상적인 삶>
한 언니(이자 친구)가 아무 날에 짧은 엽서와 함께 이 책을 선물했다.
-너보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었는데, 나는 너무 심장이 뛰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흥분된 마음을 누르느라 애썼었어. 이 책이 너에게도 근사한 시간을 남겨 주길!-
언니의 세상과 시절을 선물받은 기분이 들어 얼마나 벅찼는지 모른다.
철학적 신화적 예술적 은유가 가득한 이 책은 사실 내게 쉽진 않다.
그럼에도 질긴 음식을 꼭꼭 씹는 것처럼 내용을 천천히 씹어 읽는다. 아주 조금씩!
그러고 보니 책이 마치 육포 같다.
현재를 살다 지쳐 에너지가 필요하면 이 책을 꺼내들어 조금씩 씹으며
사유의 세상으로 잠시 떠난다.
<유선덕 - 경계의 감정>
한 친구가 내 터전으로 여행을 온 날 이 책을 선물했다.
어머니가 쓴 책이라고 했다.
나는 여전히 나를 다는 모르겠으나, 책을 읽으며
내가 내 감정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은 알았다.
어쨌건 친구는 떠났고
그날 마신 음식과 술은 전부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해 버렸지만
책은 남아 있다. 그래서 책이 좋다.
<구병모 - 버드 스트라이크>
한 동생이 졸업 전시회 날 축하 선물로 이 책을 주었다.
평소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 선물한다고 했다.
책을 건네고 쭈뼛쭈뼛 가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조금 더 유연한 사람이었으면 기쁨을 더 크게 표현했을 텐데.
네가 책을 선물해 주어서 정말 기쁘다고 또렷이 말했을 거다!
<류시화 엮음 - 사랑하라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한 선배(이자 친구)가 새해 기념으로 선물해 준 잠언 시집이다
사실 이 책은 원래부터 아주 좋아해서 가지고 있던 책이다.
이십 대 초반에
형광펜으로 마음에 드는 대목을 줄 그어 가며 이 책을 두 번 세 번 읽었고
살고 싶은 삶의 윤곽을 그렸었다.
이 책이 두 권이 되어 좋다. 한 권은 마음껏 낙서하고 생각을 적으며 읽을 것이고,
나머지 한 권은 깨끗이 오래 간직할 것이다.
또한 낙서가 되어 있지 않으니
누군가에게 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