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아카이브

거리의 심리[8]

by 비새



사람은 상처를 느끼는 순간, 가장 먼저 마음의 거리를 조정하려 한다.
가까워지기보다 멀어지는 쪽을 택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대부분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적 거리’라고 부르는데,
이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진다.
연락은 이어지고, 대화도 계속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예전처럼 마음이 닿지 않는 느낌이 들 때, 그때 이미 관계 안에는 미세한 간격이 생긴다.


거리의 시작은 종종 회피에서 나타난다.
괜히 연락을 조금 늦추고, 먼저 묻던 말을 삼키고, 굳이 마주칠 상황을 만들지 않게 된다.
상대가 싫어서라기보다는 불편해질까 봐, 상처받을까 봐
무의식적으로 한 발 물러서는 반응에 가깝다.


또 하나는 자기 보호다.
사람은 감정적으로 다칠 가능성을 느끼는 순간, 자연스럽게 마음에 안전한 선을 만든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이 이상은 위험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거리는 상대를 밀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심리적 방어선이 된다.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다가도 차이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건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구나” 하고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
이때 생기는 거리는 포기라기보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감정의 피로도 중요한 원인이 된다.
설명하고, 기다리고, 이해하려는 과정이 오래 이어지면
사람은 무너질 듯한 갈등보다 조용한 거리를 선택하게 된다.
이때의 거리는 단절이 아니라 감정 소모를 줄이기 위한 휴식에 더 가깝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마다 애착 방식이 다르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누군가는 불안할수록 더 가까이 가려 하고, 누군가는 불안할수록 더 물러난다.
한 사람은 연결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고, 다른 한 사람은 거리를 통해 안정을 찾을 때, 서로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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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감정이지만, 때로는 심리로 이해해야 할 순간이 있습니다. 이별 뒤에 남은 마음의 흔적과, 그 속에 숨어 있는 심리를 글로 엮습니다. 감성과 통찰이 머무는 곳 <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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