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시상식, 이런 식이면 안 하는 게 낫다
해마다 연말이면 방송사별로
시상식을 진행하기 바쁘다.
지금이야 연기대상과 연예대상 정도만
진행되지만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가요대상도 있었다.
OTT가 없던 그 시절,
연말의 최고 볼거리는 시상식이었고
누가 대상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고
사람들 사이에선 화젯거리였다.
그리고 가요대상이든 연기대상이든
수상자에 관한 논란 같은 건 전혀 없었고
대부분의 반응은 '받을만한 사람이 받았다'였다.
그런데 가요대상은 지나치게
경쟁이 과열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방송 3사 모두 폐지하였다.
경쟁이 과열된다는 지적에 뜨끔한 건지
연기대상과 연예대상은
경쟁의 문턱을 확 낮춰버렸다.
경쟁의 문턱을 낮추려는 방송사의 계획은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상의 권위도 떨어뜨려놨다.
공동수상자가 남발되면서
받는 사람도 뻘쭘하고,
보는 시청자들은 민망하게 만들더니
공동수상 문제를 지적하는 여론이 커지자
방송국들은 전혀 다른 발상을 내놓았다.
몇 해 전, 우연히 한 방송사의 연기대상
수상자 목록을 보고 실소가 나왔다.
남자 우수 연기자상, 여자 우수 연기자상 수상자가
합쳐서 6명이 넘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미니시리즈 부문,
주말드라마 부문, 일일드라마 부문으로
세분화돼 있었다.
사실 정확히 기억도 안 난다.
저렇게 의미 없이 구분해 놓은걸
내가 정확히 기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우수연기자상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상을 저렇게 쪼개기 해놨다.
공동수상 하지 말라고 지적하니
별의별 타이틀 만들어서 준다.
우는 애들 떡 하나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촌극이 따로 없다.
어느 방송사는 신인상이랍시고
한 대여섯 명을 줬다.
평생에 단 한번 받는 게 신인상인데
저런 식이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상이란 게 받으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 건데
이건 못 받으면 기분 나쁜 게 되어버렸다.
시상식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트로피 하나씩을 들고 가는데
과연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기쁜지 궁금할 따름이다.
연예대상도 가관인건 마찬가지다.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다 똑같은
예능프로그램인데
리얼 버라이어티 부문, 토크쇼 부문 등등
도가 지나치다.
백번 양보해서 이건 그렇다 치더라도
상 나눠먹기에 정점은 뭐니 뭐니 해도
베스트 커플상과 명예사원상, 신스틸러상이다.
방송국 관계자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상 이름을 만들면서 손발 오그라들진 않았는지.
이걸 최초로 기획했을 때
윗선에선 기발하다고 박수를 치고 좋아했을까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결재만 했는가도 의문이다.
이쯤 되면 시청자들 농락은 기본이고
수상자들도 놀려먹는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연예대상에
더 비판적인 이유는 일부 연예인들이
하반기 정도 되면 노골적으로
대상을 받고 싶어 한다고
프로그램에서 티를 낸다는 것이다.
방송국들은 그런 말하라고
코너를 만들어주고 심지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기까지 한다.
전파낭비, 세금 낭비가 따로 없다.
예전에야 저런 게 신선하고
솔직함으로 포장 됐지만 이제는
정말 식상하고 경우에 따라선
볼성사납기도 하다.
물론 본인들은
'유쾌하게 놀자는 건데 왜 진지함?'이라고
하겠지만 진지까진 아니더라도
진중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요즘 일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기죽이지 않기 위해
상장 하나씩은 꼭 받게 의도적으로
뭔가를 한다고 하는데
명색의 공중파 방송사 시상식이 그 모양이다.
연예인들이 기죽지 않아야 하는 법이라도 있는가.
신상필벌의 원칙은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하는데
그들 세계에선 예외인가 보다.
과거 수상자들은 지금의 작태를
어떻게 생각할지 무척 궁금하다.
상이란 자고로 희소성이 있고
권위가 있고 명예로워야 한다.
그러나 현 시스템은 세 가지 다
해당사항이 없으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시상식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상의 종류를 줄이든
방송사 통폐합으로 진행하든
자구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광고만 잘 채우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시간만 늘리고 연예인들끼리의
신변잡기식 말장난으로 채우는 것도
그만해야 할 일이다.
역사와 전통은 단순히
오래 한다고만 해서 의미 있는 게 아니다.
내실이 있어야 한다.
상의 영예와 시상식의 권위는
본인들이 만들어야 한다.
제아무리 아카데미 시상식,
그래미 어워즈라도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분명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시상식이 아니더라도
연말엔 볼거리, 할 거리가 넘쳐난다.
언제까지 시청자들이
당연히 봐줄 거라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