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스럽다 하지만 나에겐 필수다
루틴을 검색해 보면
'특정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 된 명령'
이라고 나온다.
이와 더불어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의
독특한 루틴 사례가 함께 소개된다.
예를 들면 이치로 선수는 아침 겸 점심으로
무조건 아내가 해준 카레만 먹고,
경기 전에는 페퍼로니 피자만 먹는다.
특이하게도 그중 두 조각은 꼭 남기는데,
다른 선수가 먹지도 못하게 한다고 한다.
방송인 서장훈은 선수 시절, 자유투를 하기 앞서
꼭 공을 다섯 번 튕겼다고 한다.
그들은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경기를 망친다고
생각하는지 누가 뭐래도 항상 그 루틴을 이어갔다.
운동선수들 뿐만 아니라 방송인이나
셀럽들도 각자만의 루틴이 있다고
밝히고, 그게 화제가 되고 나서부터는 일반인들도
생활 속 자신만의 루틴을 만드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남들에게 피해 주지만 않는다면
'자신만의 루틴'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행동들이 마음의 안정을 주고
업무적인 성과가 개선되는 걸로 이어진다면
말릴 필요도 없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나에게도 몇 가지 루틴이 있다.
일이 많이 쌓여있을 때나 글을 쓰기에 앞서서는
눈을 살며시 감는 습관이 있다.
눈을 감고 머릿속에 나만의 목차를 만든다.
먼저 해야 할 일, 그리고 그다음 해야 할 일을
순차적으로 그린 다음, 반드시 그 순서로 실행에 옮긴다.
중간에 좋은 아이디어나
방법이 떠오르더라도 기록만 해둔다.
일단 내 머릿속 목차대로 실행한 뒤에
추가하거나 중간에 삽입하거나 한다.
첫 생각과 계획이 가장 최선이라 믿기 때문이다.
거의 24시간 지킨다고 봐도 무방한 루틴은 바로 볼펜.
펜을 쓸 일이 없어도 펜을 들고 다닌다.
화장실을 가더라도,
자동차나 대중교통을 타더라도 펜을 항상 손에 쥔다.
걸을 때와 밥 먹을 때 빼곤 손에 잡고 있거나 내 시야에 둔다.
그것도 꼭 특정 브랜드의 펜이어야 한다.
자세히 보면 펜의 몸통 부분에
각이 져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다.
없으면 불안하다.
부러지거나 분실될 것을 대비해
내 방과 가방에는 여분의 펜도 항시 구비되어 있다.
펜과 눈 감기. 이 두 가지는
빼놓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고
사실 자질구레한 것들도 상당히 많다.
집안 청소는 무조건 내가 다 하기,
일요일 저녁엔 가급적 약속을 잡지 않기,
볼일을 보기에 앞서 변기를 한번 내리고 앉기,
매일 아침 휴대폰 1시간 이상 꺼놓기 등등..
가족들은 그런 나를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나는 별것 아닌 그 행동들을 꼭 해야만
기분이 좋고, 일이 더 잘 풀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해마다 하나씩 루틴을 늘린다.
내년에는 '5분 명상'을 추가할 생각이다.
나는 주변사람들에게도
루틴을 만들어보라고 권한다.
사실 루틴이라는 게 앞서 언급했듯이
유명한 사람들만 갖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굉장히 집착하는 몇몇 사람들처럼
'남들이 안 하는 괴상한 행동' 일 필요도 없다.
루틴과 습관은 다르다고 하지만
난 그 둘의 차이가 크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쉬워진다.
습관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갖고 있다.
좋은 습관을 들인다면 그것만큼 또 좋은 것도 없고.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고정된 취침 시간과 아침 식사메뉴,
하루도 거르지 않는 달리기가 그만의
몇십 년째 이어온 루틴이다.
전혀 괴상할 게 없는 행동들이다.
반대로, 좋은 습관이라고 해서 뭐 반드시
독서, 운동, 명상 같이
노력이 동반해야 할 필요도 없다.
서장훈 선수처럼 공을 다섯 번 튕겨야 성적이 잘 나오고
나처럼 펜을 꼭 곁에 두고, 잠깐의 눈 붙임 행위를 통해
일을 차분하고 수월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습관이자 루틴이다.
거창한 루틴은 오히려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까다롭고 이상한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줄 수 있다.
아울러, 루틴만 반복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
그것을 통해서 안정이라든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얻어내야 한다.
이치로가 야구사에 남긴 기록들은
루틴으로만 이룬 게 결코 아닐 것이다.
그 일련의 반복되는 행동들 속에는 분명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동반되었을 것이다.
노력 없이 그런 루틴에만 집착했다면
이치로는 훌륭한 야구선수는커녕,
아내를 못살게 굴며
동료에게 피자 한조각도 인색한 사람일 뿐이다.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아주 작은 여러분만의 루틴을 만들어 보셨으면 좋겠다.
그 작은 행동이 큰 마음의 위안을 가져다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