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제헌절을 생각해 보다
오늘은 한글날이다.
내가 어렸을 적 한글날은 쉬는 날이 아니었다.
그래서 한글날은 당연히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내가 20대가 되고 나서 공휴일로 재지정 됐는데
그때 한창 인기를 끌던 토크쇼 사회자가 힘주어
'오늘은 그냥 쉬는 날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오늘 그냥 노는 날 아닙니다'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한글의 우수성과 위대함, 그리고 한글이 우리에게 준 편리성은 엄청나다.
내가 학자가 아니라서 어떠한 근거나 사료를 제시하진 못하지만
딱 하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가 한글 없이 한자문화권에서 계속해서 살았다면
장담컨대 지금의 K 콘텐츠는 없다. 확실히 없다.
평소에는 못하더라도 오늘 같은 날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
그리고 지금까지 맥이 끊기지 않게 이어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해야 한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날인가,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휴일도 누리고 있으니.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쉬는 날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런데, 문득 제헌절이 떠올랐다.
한글날과 반대로 제헌절은 어렸을 때부터
쉬는 날이었는데 고등학생 때부터 제외가 돼버렸다.
그때 정부에서 발표한 이유는
'주 5일제 시행에 따른 생산력저하를 막기 위함'이라고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취지에 공감했다.
나이가 들어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 생각이 바뀌었다.
단순히 쉬는 날을 하나 더 취하고 싶어서? 맹세코 아니다.
제헌절이 어떤 날인지, 그리고 그날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제헌절, 말 그대로 헌법을 제정한 날이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다. 거기에 근본이 되는 게 헌법이다.
이 나라의 뼈대가 완성된 날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제헌절이 휴일로 다시 지정이 된다면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제헌절의 의의, 헌법의 가치에 대해 언론이나 학교에서
많이 다루게 될 것이며 사람들은 헌법의 소중함을 더 느끼고 배울게 될 것이다.
당장에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이라고 할 수 있는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중에서 유일하게
쉬는 날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 속에
제헌절의 의의가 은연중에 퇴색할지 모른다.
모든 나라의 헌법제정일은 중요하고 의미가 있겠지만
특히나 우리나라는 식민지배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더 큰 의미가 있다.
내가 지금에 와서 생각이 바뀐 이유는
헌법의 중요성 말고도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제헌절이 휴일에서 제외된 2008년엔
주 5일제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었다.
쉬는 날이 많아짐으로 인해 발생되는 부작용을 우려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다.
몇몇 업종에서는 특수성 때문에 주 5일이 아닌
주 6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직업군에서 주 5일 근무제가 적용되고 있고
우리 사회에 완전히 정착됐다.
그뿐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휴일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당시에는 없었던 대체 공휴일 제도가 시행되면서 쉬는 날이 더 늘었다.
대체공휴일제의 취지는 국민들 삶의 질을 올림으로써
각종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제헌절 하루를 더 휴일에 포함하면
오히려 좋으면 좋았지 당시처럼
산업 경쟁력이 위협받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입법기관인 국회에서는 여, 야를 막론하고
제헌절을 공휴일에 다시 추가시키는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한글에서 나오는 다양한 표현력이 문화의 발전을 이끌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헌법에 관심을 갖고 의미를 되새긴다면
분명 우리나라의 또 다른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