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하나의 축제가 된 마라톤 대회를 바라보며
며칠 전 주말, 아침식사를 마치고 TV를 켜니
마라톤대회가 중계중이었다.
코스가 내가 살고 있는 곳 근처이기도 하고
내가 아는 장소들이 많이 나와서 재밌게 지켜봤다.
잠시 보다가 약속이 있었던 관계로 만남 장소인 몽촌토성역에 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올라가 보니 마라톤의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FINISH 라인이 이 근처(올림픽공원)라 그런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식사를 마치고, 가을정취도 느낄 겸 올림픽공원역까지 걸었다.
시간대가 시간대이다 보니 이미 프로급 선수들은
전부 결승지점을 통과했고
아마추어 선수들 및 일반인들이 계속해서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마라톤은 참 힘든 종목이다.
그냥 걷기만 해도 힘든 거리를 뛴다니, 생각만 해도 힘들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마라톤.
옆에서 걷던 지인은 골프와 테니스로 빠졌던 사람들이
이젠 전부 마라톤을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봐도 이제 달리기는 운동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사회현상이 된듯하다.
뛰는 사람들 못지않게 엄청난 열기를 내뿜는 응원단만 보더라도
마라톤은 더 이상 '아재들이 반바지에 러닝셔츠 입고 뛰는' 운동이 아니다.
다양한 동호회에서 기발한 방식으로 참가자들을 응원하는데
흡사 대학교 체육대회 느낌이다.
뛰는 사람들의 표정도 가지각색이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한 사람들(이게 당연한 거다)이 대부분인데
그중에 마냥 해맑게 웃으면서 달리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유명 만화의 캐릭터 옷을 입고 뛰었다.
저들에게 이 대회는 축제였다.
내가 20대 중반이던 10년 전,
한 회사에서 인사관리를 하신다는 분과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마라톤 마니아였다.
대화 중, 그분은 지금도 내 기억에 남는 말을 하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력서 취미란에 '마라톤'을
쓰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난 그런 사람한테 집중적으로 질문해.
이 친구가 있어 보이려고
그런 말을 썼는지 진짜 마라톤을 하는 사람인지 구별하려고"
정말로 즐기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않냐는 내 말에
그분은 단호하게
"젊은 사람들 절대 안 해. 아니나 다를까 물어보면 다 거짓말인 게 들통나"
그렇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마라톤은 그런 이미지였다.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 '나 자신과의 싸움', '한계에 도전해 본다'라는
마음으로 임한 스포츠, 확실히 지금보다는 좀 올드한 취미였다.
당시 내 주변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전부
헬스장을 갔으면 갔지 달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세상은 변했다.
실내활동이 제한되다 보니 헬스장 이용 인구가 확 줄고
인원에 제한이 없는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문화는 점점 커지더니 '러닝크루'라는 집단이 형성되며
공원과 한강, 천변은 이제 거대한 달리기 경연장이 되었다.
일부 러닝크루들의 민폐는 말 그대로 일부의 문제니까 논외로 치자.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만 해도
체력장이라는 게 존재했는데 오래 달리기는 정말 하기 싫었다.
단거리 달리기는 그래도 중간은 갔었는데
오래 달리기는 늘 하위권이었고,
어떤 때는 그냥 선생님에게 말하고 중간에 그만둔 적도 있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달리는 친구들을 보면 참 신기했다.
그런 나도 이 달리기 문화는 참 좋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술 마시고
비생산적으로 노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 아닌가.
달리기를 통해 누군가는 살을 빼고, 지구력을 키우며 건강관리에 힘쓰고
다른 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리고 모임이 형성되면 대인관계의 폭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심지어는 영업을 위해서 뛴다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뛰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뛴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나는 지금도 뛰는 게 싫고 힘들다.
그래서 난 대안으로 파워워킹이라는 걸 찾았다.
있는 힘껏 빠르게 걷다가 보면 어쩔 땐
뭔가 '삘'이 팍 꽂히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나도 과감히 뛴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입에 비릿한 피맛이 감돌아도
희한하게 그날은 그냥 달리고 싶어진다.
한계에 다다르면 달리기를 멈추고 다시 걷기 모드로 전환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하고 있던 고민들은 다 사라진다.
그 순간만큼은 '운동하는 나', '땀 흘리는 나'만 존재할뿐
스트레스받던 나는 없다.
땀 흘리며 운동하는 건 온갖 영양제로 건강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고 더 좋은 방법이다.
러닝의 인기가 오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