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 프로야구 우승팀은 LG트윈스다.
LG는 재작년에 이어 2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에 창단 한 이 팀은 창단 첫해 우승을 기록하고
4년 뒤인 1994년 두 번째 우승을 했다.
그 후 무려 29년이나 '무관'으로 있던 팀이
불과 3년 사이에 통산 우승 횟수와 같은 횟수의
우승을 기록한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우승하지 못했던 그 긴 시간 동안 엘지는
'감독들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였는데
22 시즌 종료 후 부임한 한 감독이 팀의 역사를 바꿔놨다.
이번글에서 그 감독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염경엽.
그는 여타의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야구선수 경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내가 아는 감독들 중
가장 다양하고 그들이 해보지 않은 경험을 한 야구인이다.
선수시절 성적을 보면 본인 스스로
웃음소재로 삼을 만큼 형편없다.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이다.
통산 1500 타석이상 들어선 타자들 중 타율이 가장 낮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초라한 선수생활을 마치고 그는 은퇴를 했다.
우리가 아는 수준의 네임밸류를 가진 선수들은
대개가 은퇴 후엔 코치 연수를 받는다.
그리고 프로팀이나 대학팀, 좀 낮으면
중/고등학교의 코치를 시작하며 지도자 경력을 쌓는다.
하지만 이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췄거나
기록을 남긴 사람들에게만 해당하지
통산 타율이 2할도 안 되는 염경엽에게는 해당 없는 이야기다.
유명하지 않으니 당연히 방송가의 해설위원 제안도 없었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야구판을 떠날 것이다.
쓰디쓴 실패만 맛본 그 야구판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심하면 세상에 대한 원망이 쌓였을 것이다.
그러나 염경엽은 야구장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프런트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말이 좋아 프런트지 사실상 잡일 하는 사람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여기가 필요하면 여기로 달려가고,
저기서 필요하면 저기로 달려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소속팀이 우승하는 날,
야구장이 아닌 호텔에서 우승 축하 행사 준비를 하던 때가
슬펐다고 밝힌 바 있다.
어떤 기분인지 짐작이 간다.
자신도 야구 선수출신이고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동료들은 현장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데
본인은 그들의 '2부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그 씁쓸한 기분.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았다.
실제로 그가 몸담았던 팀이 해체되자
무려 세 팀이나 그에게 프런트 제안을 했다.
그는 엘지를 선택했고 그곳에서도
자신이 맡은 바를 열심히, 묵묵히 했다.
프런트 업무란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나지 않게 선수들을 관리해 주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아마도 그는
선수 때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게 프런트 생활을 이어오다 드디어 코치 생활을 시작한다.
매니저 염경엽이 그러했듯 코치 염경엽도 열심히 했고
결국 대한민국에서 단 여덟 명만 할 수 있는,
프로야구팀 감독을 역임하게 된다.
현장의 최고 사령탑인 감독 계약기간이 끝나고는
다른 팀의 단장으로 부임하면서
그는 현장과 사무실의 최고 책임자를 모두 경험하게 된다.
단장으로 있으면서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후에는 해설위원을, 그다음엔 지금 우리가 아는
엘지트윈스 감독으로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그는 야구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직업을 했다.
선수, 프런트, 지도자, 해설위원까지.
나는 그의 인생여정을 보면서 응원하는 팀은 다르더라도
'염경엽'은 응원하고 싶어졌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실망감에 사로잡혀 그 세계를 떠나 영영 쳐다도 보지 않던가,
아니면 더 보완해서 나아갈 시도를 하거나.
그는 나아갈 시도를 한 사람이다.
꽃길은커녕 가시밭길인걸 알면서도 시작했다.
그리고 묵묵히 걸어 나갔고 정상에 올랐다.
선수단 스케줄을 관리하고 현수막 거는 잡일부터,
선수지도 및 경기운영, 구단 경영과 해설까지
모두 해본 그의 경험은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낸
스타플레이어들보다 훨씬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는 바람에 쉽사리 뽑히지 않고
초석을 굳게 다지고 올라가는 건물은 무너질 염려가 없다.
차근차근, 단단하게 올라가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성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