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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여자 Jan 19. 2023

마르지 않는 샘


두 동생의 어릴 적 기억엔 내가 없다고 한다. 여동생은 저를 '언니'라 부르며 어디든 따라다니는 남동생이 귀찮은 한편 안쓰럽기도 해서 어디든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여동생이 남동생을 데리고 소꿉놀이, 인형놀이, 공기놀이를 할 때 그 회상 어디에도 나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릴 적 나의 하루는 길었다. 늘 집 근처에서 맴도는 두 동생과 달리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행동반경을 넓혀가며 친구들과 놀았다. 할머니는 그런 나의 행동거지를 보며 빨빨거리며 싸돌아다닌다는 표현을 하셨다. 그 말에 짧은 다리를 연거푸 움직이며 잰걸음으로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동네견이 연상되곤 했지만 딱히 부인할 순 없었다. 나는 늘 동생들을 내팽개치고 공사다망한 나의 시간을 꾸려 나가느라 바빴다. 내 삶에 외향형 DNA가 51%는 되던 때 이야기이다.


그런 내가 종종 가던 친구집이 있었다. 우리 집을 나와 큰길을 걷다가 보면 난 작은 길 안에 살던 친구. 그 친구집에 가는 길엔 작은 우물이 있었다. 우물이 흔히 있던 때는 아니라 우리는 그 속에 고개를 쑥 빼고 소리를 질러 보기도 하고, 괜히 물을 길어 올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기다랗고 음습한 그 구멍 아래는 늘 어둠이 고인 듯하여 어느 날은 괜스레 빙 둘러가기도 했다.


우물 옆에 살던 그 친구는 뭐든지 잘했다. 공부도, 글짓기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을 잘 그렸다. 학원을 다닌 경험도 없이 그저 타고난 재능이 많은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의 그런 재능 중에서도 특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작고 까무잡잡한 손이 그려내는 그림은 한없이 부드럽고 조밀했다. 나는 친구 옆에 엎드려 사람의 얼굴형, 빛나는 눈동자, 장미꽃 같은 것을 따라 그렸다. 네 손을 떼어내 나한테 붙였으면 좋겠다는 끔찍한 소리를 해가며 그 친구를 한껏 부러워했다.


한 번은 친구의 집에 갔더니 야외 독서실이 지어져 있었다. 마당 한편 블록 벽에 기대어 책상과 의자를 놓고, 외부는 따로 제작한 나무틀에 비닐을 입힌 비닐하우스형 독서실이었다. 출입하는 문까지 달려 있고 실내는 제법 따듯하고 아늑했다. 나도 저기서 공부한다면 금방 실력이 오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역시 성적이 오르지 못하는 것은 상상을 현실로 실현시켜 부지런한 아버지가 없어서라 생각하며 그 아버지마저 부러워하곤 했다.


친구가 깊은 샘에서 마르지 않는 재능을 퍼올릴 때 나는 그 옆에서 역시나 마르지 않는 샘으로 괴로워했다. 그땐 그렇게 재능을 타고 난 자가 부럽던 때였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내가 친하고 싶은 친구의 단짝 친구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학업보다 교우관계로 속상한 일이 더 많을 때. 내가 다가가서 친하고 싶은데 늘 다가설 수 없도록 벽을 친 듯하던 그 단짝은 내가 허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대상이었다. 생각보다 견고하고 완강해서 쉬이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 친구의 단짝이 되고 싶어 늘 주춤하며 주위를 배회했다.


대학생이 되니 두루 친하여 발이 넓던 이가 부러웠다. 캠퍼스 이곳저곳을 누비며 친분을 쌓아가고, 어느 무리에나 낯설지 않게 어울리던 이가 부러웠다. 그런 치들은 대개 술마저도 잘 마셔서 같이 있기만 해도 분위기가 화사해지고 유쾌해졌다. 한 것 없이 억울한 학창 시절을 보낸 후 맞이한 대학에서는 좀 더 웃고 싶었고, 그래서 만나면 그저 밝아지는 사람이 좋았다.


늘 사람 속에서 그곳에 원만하게 녹아들기 위해 애쓰던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타격감 없는 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늘 눈치를 보고 여기저기 속으로 계산할 것이 많은 나는 고요히 앉아서도 모든 팀에서 일어나는 일을 꿰고 있었다. 그래서 분위기를 제일 먼저 읽고 눈치가 빨랐지만 그래서 늘 피곤했다.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미어캣이 되어 외로운 도리질을 하다 보면 결국 나를 맞이하는 건 고단함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내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타격감 제로. 눈치 제로. 나 홀로 세상에 살던 이였다. 그들은 지도에서 저만치 떨어진 섬같이 존재하여 늘 동떨어진 것 같으면서도 동일한 거리를 유지하며 늘 곁에 있었다. 무대뽀 기질은 이미 만인이 인지하여 아무도 건드는 이 없고, 아무도 그의 말에 토를 다는 이도 없이 그를 대하는 모든 사람이 그저 먼저 이해하고 마는 쪽으로 노선을 돌렸다.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리 없는 전쟁들 속에서 그는 마냥 편했다. 아무것도 신경쓸 것이 없으니 늘 고요하고 잔잔했다. 예전처럼 무언가 가진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 듯한 사람. 내가 따라갈 없어 열등감 들게 하던 사람이 아니라, 닮고 싶지 않은 데 이상하게 부러운 사람. 그런 사람이 부럽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브런치를 하면서 다시 생겨난 나의 샘을 자극하는 이는 모든 글을 쓰는 이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그대로 문자화한 듯한 글, 유머를 속도감 있게 풀어 시선을 놓을 수 없는 글, 내가 찾아낼 수 없는 어휘와 문장을 적재적소 구사하는 글, 순간을 영원처럼 늘인 듯 그 사이를 촘촘히 그려낸 글, 글을 풀어내는 솜씨가 유려하여 마음을 앗아가는 글, 진심을 고요히 고백하는 담백한 글, 그 외 글. 글. 글.


그들이 내뱉는 모든 어휘와 만들어내는 모든 문장이 나의 부러움이 되었다. 그 글은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 열등감을 주기도 하여 글 앞에 선 나를 여러 번 단념시키기도 했다. 지금 내게 가장 부러운 것은 내가 금방 취할 수 없는, 축적된 시간이 만들어 낸 그들의 글이다.




예전 그 골목에서 보던 우물은 어느 날부턴가 길어 올리던 바가지가 종일 마르기 시작하더니 또 어느 날엔가 갔더니 딱딱한 시멘트 아래 자취를 감추고 영영 봉인되어 버렸다.


그 옆에서 느끼던 어린 나의 열등감도, 마르지 않던 나의 도 모두 봉인되어 흔적이 없어졌다. 그래도 나는 그 응달 아래 쓸쓸히 고여있던, 아직도 흐르고 있을 것 같은 마르지 않는 샘이 느껴진다. 나의 샘이 마르지 않고 늘 누군가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항상 적당량의 물만 고이는 샘은 많은 것을 담을 것 같았지만 적당히 비우는 편을 택했다. 나의 샘도 흘러 흘러 많은 것을 비우고 나면 마를 날이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나의 글샘은 늘 적당히 고여있고, 내 안의 샘은 마르길 바라본다.




#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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