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및 의류 분야 진학을 결심하는 학생들은 대체로 패션에 관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오히려 나는 어렸을 적 경험한 해외생활 때문에 우리나라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었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3요소인 '의, 식, 주'는 문화 형성 배경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기 때문에 진로를 정할 때 많은 선택지 중 하나로 염두를 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1순위는 아니었던 '의류'가 선택된 배경에는 의외로 꽤나 단순한 이유였다.
한복이라면... 괜찮을지도...?
엄마가 한 때 굉장히 빠져 계셨던 드라마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드라마 팬들 사이에선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해지는 MBC 드라마 '다모'이다. 그리고 그중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드라마 속 의상이었던 '한복'이었다. 내 기억으론 방송국 의상실에서 대여한 한복으로 찍던 기존의 사극들과 달리 드라마 '다모'는 따로 제작한 한복으로 촬영한 것으로 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채도 높은 색상의 한복이 주를 이루던 때였는데 드라마 속의 한복들은 전반적으로 톤 다운이 된 색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배우 이서진 님이 맡으신 황보 종사관이 착장 했던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채도 낮은 적색의 조합으로 된 종사관 복이 가장 기억이 남는데, 이 옷을 통해 나는 "한복도 고급스러울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입시를 준비하던 때에 그 당시의 생각이 나면서 문득 막연하게 "의류학과면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엄마는 딸을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계통을 공부하길 원했고, 나 역시 머리 써서 해야 하는 공부를 더 이상 하기 싫었다. (참고로 나는 화학을 좋아하던 이과생이었다.) 이런 여러 조건들과 계기가 모여 패션에는 관심 없던 학생 1의 지원서가 제출되었던 것이다.
대학 합격 통지를 받고 입학하기 전 짧은 방학 기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어떻게 하면 한복을 좀 더 편하고 예쁘게 만들 수 있을까였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때만 해도 학교에서 '한복 입는 날'이 따로 있었고, 명절 같은 날에 한복 입고 친척 집에 방문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풍습이 사라져 더 이상 생활 속에서 한복을 입는 경우가 없어졌고, 나는 그 이유를 한복이 입기 불편하고 예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기곤 했다. 그래서 의상 공부를 하면서 이런 부분들을 개선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역시나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비록 그 꿈을 내가 직접 실현하지는 못 하였지만, 오늘날 '생활 한복'(참고로 학계에선 '신(新) 한복'이라고 표현한다.)이라 불리며 나보다 더 뛰어난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챕터에서는 전통 복식에 관심이 있어서 의상디자인과에 진학을 했고, 또 막연히 디자이너가 될 거라 여겼던 내가 학부생 시절 주로 익혔던 분야 (특히 주로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이들이 배울 법한 영역)들을 중심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경험과 관점들을 기반으로 그 분야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나의 생각들을 적어내려갈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이들에겐 기대했던 내용들이 아닐수도 있다. 때문에 그저 각자가 나름의 기준으로 즐길 수 있는 만큼, 얻어갈 수 있을 만큼 정도의 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