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눈보라 속의 길, 그리고 누나

Villadangos del Páramo ➝ Astorga (약 27km

by 인생클래스

새벽녘, 세찬 비바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마치 태풍이라도 몰려온 듯 창밖은 요란했다.

어제 눈비를 맞으며 겨우 걸어온 끝에 축축했던 등산화가 겨우 말라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비바람이라면 내일은 또 어떻게 걸을까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시골 마을 숙소에 혼자 머물며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묘한 평온이 마음을 감싼다.


고요함은 늘, 폭풍이 지난 뒤에 온다. 늦은 아침,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게 개었다.


국도를 따라 난 길을 그림자 벗 삼아 천천히 걷는다.

새벽의 폭풍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찬란한 햇살 아래 내 그림자가 생동감 있게 춤춘다.


길 끝에 다다르자,
13세기에 세워졌다는 오르비고 다리(Puente de Órbigo)가 모습을 드러낸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중세의 돌다리로,
전설에 따르면 기사 돈 수에로가 이 다리 위에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 흉갑을 두르고 300번의 결투를 치렀다고 한다.

나는 그 다리 위에 멈춰 선다.
오르비고 강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물결 위로 햇빛이 반짝인다. 그 순간, 이 길이 단지 여행이 아니라 나 자신을 조금씩 회복시키는 과정임을 느낀다.


오늘부터는 진짜로,
누군가 내게 말했던 대로 '안단테 안단테(Andante Andante)'의 속도로 걷기로 했다.

혼자 걷다 보면 걸음이 자꾸 빨라지니,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추고, 길가의 들풀 하나, 돌담 하나에도 시선을 머물게 노력한다.

다리를 지나며 아스토르가(Astorga)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하나는 직선거리 15km, 다른 하나는 작은 마을을 경유해 16km.

나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했다.
사람 사는 풍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선택한 결정이다.


잠시 후 도착한 비야레스(Villares) 마을,
눈발이 거세게 휘몰아친다.


급히 마을 안에 있는 바(Bar)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시켰다.


창밖으로 눈이 수평으로 날아간다. 서너 명의 주민들이 들어와 내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들은 눈보라 속을 걷는 낯선 순례자를 안쓰럽고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 속엔 묘한 따뜻함이 섞여 있다.

폭설이 내리자, 오늘 여기서 멈춰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배낭을 다시 멘다. 조금만 더, 한 걸음만 더.


배낭 커버를 씌우다 문득 생각난다.
아침에 먹으려던 컵라면 두 개, 하지만
숙소 주방이 고장이라 끓이지 못하고
비닐봉지에 담아 여기까지 들고 왔다.


(Bar)에서 따뜻한 물을 얻어 컵라면에 붓고 눈보라 속에서 라면이 익가기를 기다리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다가왔다.

사회성 좋은 녀석이다. 내가 한입 먹을 때마다 애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래, 같이 먹자.
"나 한국 사람이야. 기억해. 이건 한국의 O라면이야."


눈발 속에서 둘이 나란히 앉아
김이 나는 라면을 나누어 먹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다.

낮은 언덕을 세 번 넘는 동안
눈은 점점 더 굵어졌다.
하얀 들판 사이로 발자국만이 이어진다.


그때 오래된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리고… 누나.


내겐 누나 한 분이 계시다. 어릴 적 선생님들은 늘 말씀하셨다.


"누나는 그렇게 잘하는데, 너는 왜 이 모양이냐." 그 당시엔 그 말이 참 싫었다.


누나는 공부도 잘했고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직접 집까지 찾아와
"수재들만 가는 학교에 보내라."라고 권할 만큼 총명했다.

하지만 넉넉지 못한 집안의 현실은 냉정했다.

남동생이 많다는 이유로, 누나의 길은 거기에서 멈췄다.


그 후 누나는 감청색 병에 담긴 위장약을 옆에 두고 오랜 세월을 버텼다.


병에서 흰 액체를 따를 때마다 우리 모두의 마음도 함께 쓰라렸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누나는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도시로 나가 공장에서 일했다.

그해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아침,
누나는 말했다.
"오늘 저녁엔 우리 튀김집 가서 저녁 먹자."

넉넉지 않은 공장 생활인데 큰 계획을 했을 거다.


하지만 퇴근하고 돌아온 누나는
눈이 퉁퉁 부을 만큼 울고 계셨다.

이유는 이랬다.

공장에서 퇴근하는 길, 고등학생들이 누나에게 "공○○" 하며 놀렸단다.

지나가며 하대하듯 부르는 말.
누나는 화가 나 조용히 항의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날 누나는 하염없이 울었고,
나도 이유도 모른 채 따라 울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약속이 깨져서' 울던 아이였고,
누나는 '세상과 싸우다 현실에 지친' 어른이었다.


눈이 내릴 때마다
그날의 장면이 떠오른다.

하얀 들판 위로 끝없이 내리는 눈발 속,
눈물로 얼룩진 누나의 얼굴이 겹쳐진다.

오늘도 그 얼굴이 떠올랐다.
숲길을 홀로 걸으며, 그날처럼 서럽게 울었다.


만약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면
누나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 누구도 누나의 꿈을 막지 못하게.


지금 내가 흘리는 눈물은

어린 시절 튀김집에 가지 못해 분했던 눈물이 아니다.


펼쳐보지도 못한 꿈을 안고 살아온 누나의 상처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그 나이에 이르면 알게 되는 눈물이다.


펴보지도 못한 꿈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누나의 그 상처를 이제야 조금은 이해하게 된,
안타까움의 눈물이다.

Astorga는 옛 로마 제국의 군사도시였고,

지금은 가우디가 설계한 '주교궁(Palacio Episcopal)'으로 유명하다.


눈 덮인 대성당 앞에 서면 시간이 멈춘 듯,

내 안의 지난 이야기들이 하나씩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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