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객
가을이 깊어갈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드문 공원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햇살이 옷깃을 스며들듯 마음까지 잔잔히 스며든다.
책을 읽고, 그날의 마음을 천천히 정리하고,
호흡만 따라가며 명상하듯 고요에 잠기는 그 순간은 누구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더 충만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스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이렇게 좋기만 해도 괜찮은 걸까?
혹시 내가 점점 사회성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사람들에게 성격 결함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예전의 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좋아했다.
모임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참석했고
대화를 나누는 일에서 에너지를 얻곤 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분주한 소리보다 고요가 좋고,
열 명의 목소리보다
내 마음 안에서 들리는 작은 숨결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조금 불안하다.
내가 이렇게 혼자에 익숙해지는 것이
세상과의 거리감으로 보일까 봐.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남을까 봐.
혼자가 좋다는 사실 자체가
혹은 그 편안함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것이
성격의 결점처럼 오해받지 않을까 걱정될 때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
이 편안함은
세상과 멀어져서가 아니라
드디어 ‘나’와 가까워졌다는 신호라는 것을.
그러던 오늘 아침, 나를 스스로 웃게 만든 일이 하나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던 중
미화하시는 분과
전동차로 음료를 판매하시는 분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너무도 보기 좋았다.
그래서 판매하시는 분께 조용히 여쭤봤다.
"아파트에 미화하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세요?"
열 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음료 중 가장 좋은 것으로 열 병을 주문했다.
"수고 많으신 미화팀 분들께 전해드려 주세요."
이 작은 선물이 오늘을 조금 더 기분 좋은 날이 되길 바랐다.
그저 마음이 움직여 한 행동일 뿐인데
나 스스로가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어진 장면이 조금 웃겼다.
판매하시는 분이 조심스레 물으셨다.
"전해드릴 때… 몇 동 몇 호라고 말씀드리면 될까요?"
순간,
머릿속에서 오래전 보던 만화의 대사가 번쩍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주저 없이 말했다.
"그냥… 지나가는 과객이라고 전해주세요."
말하고 나서도 나 스스로 피식 웃음이 났다.
판매하시는 분도 웃음을 참지 못하셨다.
왜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 한마디 덕분에
오늘 하루가 조금 더 가벼워지고,
조금 더 유쾌해졌다.
출근길에 혼자 생각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고 해서
내가 차갑거나 사회성이 떨어진 사람은 아니라는 것.
나는 여전히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작은 친절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
다만 예전보다 조금 조용해졌고,
조금 더 깊어졌으며,
조금 더 나와 가까워졌을 뿐이다.
혼자가 행복한 시간도,
누군가와 나누는 짧은 미소도,
그리고 '과객'이라는 웃음 섞인 한마디도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드는 조각들이다.
나는 이 조각들을 꽤나 마음에 들어 한다.
그리고 이 계절이,
혼자여도 충분히 따뜻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