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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달그 Oct 30. 2022

진정한 휴식

텅 빈 바보가 되기

아이들을 기르며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체력도 체력이지만 자신이 무능하다는 생각이었다. 누가 뭐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있는 건지에 대해 자괴감이 들었고 지친 내색 없이 뭐든 척척 해내는 여자들이 부러웠다. 게다가 난 그때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져 갔다. "누가 너한테 그림 그리라고 했어?"

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힘든 표정을 애써 숨겼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용감한 사람처럼 쿨한 척도 해봤다.

무능한 내가 싫어 아기를 업고 그림을 그렸다. 읽히지도 않는 책을 꾸역꾸역 읽었다.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며 몸과 마음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은 것이다. 그땐 그것이 나를 괴롭히는 것인 줄 몰랐다.

예쁘다고 좋다고 말해줘.

올해는 내 생에 가장 바쁜 나날들이었다. 그만큼 통장의 사정도 나아졌다. 가을의 끝에 와서야 숨을 고르는데 나는 제대로 쉬고 있지 못하다. 여전히 스스로 무능하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그림을 더 잘해야지. 돈도 더 벌어야지. 더 유능해져야지. 너 뭐하고 있어?"

 충분히 휴식할 수 있는데도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아 이것저것 만지작거린다. 도대체 나에게 계속 뭔가를 하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일까?

원인을 찾자면 몇 가지 정도는 나오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에너지 소모다. 그냥 좀 단순해지면 어떨까? 예쁜 것을 보면 예쁘다 말하고 맛있으면 맛있게 먹고 졸리면 자고 하기 싫으면 안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도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인을 기다리는 찻잔들. 그러나 사람들은 식은 차를 신경쓰지 않는다.

지난 추석 우리 네 식구는 코로나에 걸려 강제 휴식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회복이 빨랐다.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배달받아 놓고 배고프다는 소리가 없으면 굳이 식구들 밥하느라 애쓰지 않았다.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에서는 에라 모르겠다 자세가 될 수 있었다. 일이고 집안일이고 내 멋대로 하자. 아무 생각 없이 방바닥과 하나 된 시간은 진정한 휴식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다.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었고 일들의 수위가 정해졌으며 마음에 쌓인 찌꺼기가 어느 정도는 제거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은 때때로 약이 될 수 있었다.

후 일과 작업에 대한 부담이 훨씬 줄었다. 전시 준비 마감에 대한 압박은 여전하지만 한꺼번에 모든 게 좋아지리라는 것은 욕심이다. 시간이 지나고 작은 깨우침의 빛깔도 바래어 갔다. 오늘도 난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고 조바심이 난다. 그러나 빛깔은 아직 살아있다. 알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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