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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달그 Mar 30. 2022

그림명상

고마운 발견


어느 봄날 과거의 따분했던 작업 과정을 떠올리니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다가는 언젠가 그림을 그만둘 것 같았다. 그래서 단순히 좋아하는 주제를 그려보자는 마음으로 베란다의 식물들을 캔버스에 옮기고 있었다. 평온한 날씨와 조용한 분위기 때문이었을지 몰라도 그 시간만큼은 지극히 명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명상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어떤 날은 걷기로 또 다른 날은 멍 때리기로 명상에 가까운 행위를 시도 해본적은 있어도 그림을 통한 방법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나는 꽤 긴 시간 억눌린 감정을 안고 살았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피하면 피해질 줄 알았지만 날이 갈수록 더 솟구치기만 했다. 결국 내가 나 때문에 힘든 것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내면에 관한 책들도 접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림 그리기로 명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날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명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날마다 그림을 그린다면야...


2022.03 막막함을 이겨낸 흔적


밥벌이와 꿈 사이에서 갈등 하다가 먹고사는 것에 저울이 기우는 것은 나도 피해갈 수 없었다. 화가로 살면서 “뭐 먹고 사냐?”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결론은 밥은 굶지 않았고 예술은 이어졌다. 세상 사람들이 이런저런 좋은 조건을 갖추느라 자신을 잃어버릴 때 나 또한 자신을 잊곤 했다. 그림 실력에 관한 자격지심이나 성공과 함께 멀리 점프한 이들을 바라보며 한숨 쉬는 일은 뒤로하고 그림과 함께하는 삶으로도 충분해지기를 바란다.  

최근 짐으로 방치된 공간을 치우고 작업 테이블을 놓은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 거실과 방으로 쫒기며 재료를 펼치고 접는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서 꼬박 하루를 다 바쳐 공간을 비워냈다. 이 작은 방에서 감당할 수 있는 크기라면 당분간 재료들을 들고 집안을 방황할 일은 없을 것이다. 작업 테이블 앞에 앉아 있으면 나만의 숨고르기 장소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투우장의 소가 잠시 머무는 자리처럼. 여름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이 있는 거실이나 바람이 잘 드는 곳으로 갈 테지만 말이다. 


 

그림은 그나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었음에도 큰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막막한 화면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공황증상 직후 눈앞이 하얘진 것을 또 다시 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해야 했다. 나의 감정을 바라보고 정화해낼 방법이 오직 그것이었으므로. 그렇게 주저하는 손으로 천천히 선 하나하나를 그었다. 여전히 내 손은 느리고 방황하는 날이 더 많지만 조금이라도 내면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그게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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