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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달그 Apr 07. 2022

잘 못 탄 버스가 준 선물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희망쉼터 수업을 맡아 하게 되었다. 세 번째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큰길로 나갔다. 쉼터 근처로 지나는 버스는 간격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빠른 버스를 타고 싶었다. 정류장 전광판을 보니 15분 이내로 도착하는 버스가 있었다. 집을 나서는 길에도 그 버스가 지나는 것을 봐서 나는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고 버스에 올라탔다.

얼마나 갔을까. 생각보다 멀리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아 스마트폰으로 버스 경로를 보니 나는 집 반대 방향 종점을 향하고 있었다. 얼른 벨을 눌러 군산의 신도심 부근에서 내렸다. 택시를 탈지 걸어갈지 고민하며 근처 정류장을 보았지만 바로 집 근처까지 가는 버스는 없었다. 나는 버스가 가장 많이 다니는 대학로 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바람은 생각보다 따가웠다. 한 시간 수업하러 나와서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걷기 운동이나 하지 뭐.”

그녀와의 수다가 머물러 있는 공원

  

나는 이내 마음을 바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익숙한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 늦여름 친구 같은 제자와 모기에 뜯기면서 수다 삼매경에 빠졌던 곳이다. 우리 동네가 아니라 낯설기도 했지만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벤치에 앉았다. 발밑엔 푸른 들꽃이 가득 피었고 시원하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도 잎사귀들을 품고 있었다. 이미 산수유 꽃이 피고 목련 봉오리가 하얗게 준비한다는 것을 목격하고도 계절을  느끼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느 계절 보다 봄을 그렇게 좋아해 놓고선. 의아함과 동시에 버스를 잘 못 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공원에서 봄을 인지하는 첫 번째 선물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을 후려치는 바람이 가까스로 신선해진 마음을 어지럽혔다. 순간 또 익숙한 거리가 보였다. 군산 출신 문학인의 사진과 글이 있는 문인의 거리였다. 이곳 역시 차를 타고 지나가기에 바빴지 제대로 본적은 없었다. 재료와 디자인이 꽤 완성도가 높았다. 원고지 모양에 글을 넣은 벽이 마음에 들어 길이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예술로 표현 한다는 것이 가치 있고 정말 멋진 일이라는 것을 다시 느끼고 작업을 계속 해나가야겠다는 의지를 두 번째 선물로 받았다.

    

극장 사거리를 건너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그곳엔 같은 해에 첫 아이를 낳은 친구와 함께 갔었던 국수집이 있었다. 세 살배기 두 아이와 좁은 식당에 착석해 국수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아이를 데리고 혼자 나간다는 것 자체가 무척 용기 내야하는 일이었다. 친구가 함께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 후 아이를 데리고는 딱 한 번 더 예림옥 콩나물 국밥을 먹을 수 있었다. 친구의 얼굴과 커버린 아이들이 생각나 눈시울이 불거졌다. 대학시절 절대 친해질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지금껏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된 것에 감사했다. 아이들을 기르며 일상의 밖으로 밀려난 친구의 존재가 한 없이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저녁으로 갈수록 바람은 더 강해졌다. 아까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찬바람이 조금만 닿아도 귓속에 통증이 생기는 탓에 이어폰이라도 꼽고 있지 않으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걷고 있는 거리는 모든 게 펄럭거릴 지경인데 바로 맞은편 아파트 단지는 고요했다. 낡은 외벽을 배경으로 꽃나무가 햇빛을 받고 얌전히도 서 있었다. 꽃과 나무를 원체 좋아하는 터라 나는 그 장면 밖에 보이지 않았다. 햇빛을 받아 더욱 빛나는 꽃나무 한그루에서 위로를 얻고 이 걸음걸음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과 사거리를 건너자 유흥가가 나왔다. 바닥 여기저기 찌든 때와 지저분해 보이는 분위기가 칼바람의 괴로움에 덤을 얹었다. 다행히 멀리 대학로가 눈에 들어왔다. 시야에 든 것만도 어디냐며 걷고 있는데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이 날 큰 아이에게 치킨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집에 들어가 따끈한 치킨과 국물을 떠먹는 상상에 음식 냄새가 더해지니 무척 배가 고팠다. 계속 이어지는 상가들을 보며 얼른 코로나가 끝나기를 바랐다. 코로나로 굶어 죽을 줄 알았던 우리 부부였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일이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아이들 먹을 것을 사줄 수 있어 또 감사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함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받고 곧 나올 길을 향해 걸었다.     

드디어 대학로 큰길에 다다랐다. 언덕 위 정류장까지만 가면 된다. 거의 도착했을 때 언덕 아래에도 정류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애써 태연한척 스마트폰 NFC를 켜고 버스를 기다렸다. 10분도 안되어 집 앞까지 가는 버스가 왔다. 지금까지 고생을 위로라도 하는 듯 버스기사 아저씨는 너무도 친절했다.

“삑”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참 예쁜 전자녀의 목소리.

봄은 경이롭다

제법 사람이 차 있는 버스였는데도 자리가 있었다. 마침 해가 들어와 찬바람에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잠이 밀려왔다. 가물거리는 눈꺼풀을 이기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데 주간 노인보호센터가 눈에 띄었다.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얼마 전 노인센터를 다녀오신 후 코로나에 걸리셨다. 몸이 약해진 할머니에게 큰 타격이었는지 결국 병원에 입원하셨다. 엄마는 시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다. 평생을 모시고 살면서 좋은 소리 한 번 못 듣고 시집살이를 했다는 것이 엄마를 억울하게 했다. 나도 한 때는 살갑지 못 한 할머니를 미워한 적이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길러 봤다고 해서 엄마와 할머니의 입장을 백퍼센트 이해 할 순 없지만 두 분 모두 그 시대의 한 여인으로서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나에게 최고의 사랑을 줬음을 문득 깨달으며 목적지 없는 미움을 달리는 버스길에 놓아 보냈다.

    

치킨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집에선 세 식구가 나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서둘러 치킨을 주문하고 먹다 남은 국을 데우고 밥을 했다. 귓속통증과 다리의 뻐근함도 점점 가라앉았다. 마침내 식탁에 온 식구가 앉아 식사를 했다.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치킨을 열심히 먹었다

육아를 하며 경제적 현타가 왔을 때 미술에 관련된 일을 완전히 그만두려고 한 적이 수 없이 많았다. 통장의 잔고가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내가 아무 쓸모없이 세상에 버려지는 것이었다. 그 막연한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을 때 내가 해온 생각들이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알아보지 못한 주변의 좋은 사람들로부터 응원과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그 덕에 용기를 내어 작업과 미술수업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잘 못 탄 버스가 소소하지만 중요한 깨달음의 길로 나를 인도한 것처럼 삶의 굴곡 또한 나를 성장시키고 좋은 것들도 만나게 했다. 류시화의 책 제목처럼 나에게 닥친 일들은 좋은지 나쁜지 아무도 몰랐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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