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편
출사 出寫
사진사가 출장 가서 사진을 찍음.
전문 사진가도, 사진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지만 그저 사진 찍을 때 가장 도파민이 폭발하는 사람이라고 날 소개하고 싶다.
휴일이 생기면, 약속 장소가 골목길이 아름다운 곳이라면, 어제 비가 무척 내려 오늘 노을이 예쁠 것이라고 예상되면 나는 얼른 가방 한편에 카메라를 챙겨 집을 나선다. 내게 사진 일을 지시한 사람도, 찍어달라고 요청한 사람도 없지만 늘 나 홀로 사진 출장을 가는 셈이다.
일상 속 조금의 틈이라도 생기면 망설임 없이 출사를 나선 턱에 추천하고 싶은 출사지 리스트가 꽤 생겼다. 먼저 서울에서 추천하고 싶은 출사지를 소개하겠다.
1. 올림픽공원
올림픽 공원은 숨겨진 장소가 너무나 많다. 이미 유명한 나 홀로 나무와 평화의 광장도 있지만 넓은 공원에서 비밀스러운 스팟을 발견하며 출사 하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특히 봄과 초여름 시기, 푸릇푸릇한 연녹색 색감이 가득할 때 공원을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나 홀로 나무 들판에서 평화롭고 잔잔한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사진을 남길 수 있다.
또한 계절별로 피는 꽃들도 아름답다. 장미가 피는 시기에는 장미정원, 가을엔 황화코스모스가 피는 들꽃마루에서 계절의 정취가 가득 묻어나는 사진을 담을 수 있다.
2. 영동대교
서울에 많은 다리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영동대교를 추천하고 싶다. 내겐 영동대교가 과외 학생 집으로 갈 때 지나는 길이어서 노을이 예쁜 날엔 늘 사진을 찍었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도로에 가득한 퇴근하는 차들, 산 너머로 지는 노을과 남산타워의 어둑한 형상이 낭만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노을이 지는 시간대에 방문을 추천한다.
3. 창신동 골목
따뜻한 색감과 귀여운 마을 분위기를 담고 싶다면 가장 추천하는 곳이다.
큰 랜드마크 출사도 좋지만 조용하고 정겨운 동네 분위기를 담는 건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감 가는 동네에 가득 찬 사람이 만들어낸 온기들은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 마음이 포근해진다.
동네를 거닐다 보면 짱구는 못 말려에 나오는 떡잎마을에 들어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순수하게 뛰어노는 아이들과 퇴근시간에 맞춰 귀가하는 어른들, 배달 오토바이와 시장에서 한잔 기울이는 직장인들까지.
꼭 창신동이 아니더라도 주변의 골목길을 거닐며 목적지 없이 찍는 출사도 재밌을 것 같다.
4. 강변 테크노마트 하늘공원
구름이 예쁜 날, 노을이 예쁜 날, 쾌청한 날씨에 늘 생각나는 출사지이다.
강변역 테크노마트 위에 올라가면 제2롯데타워가 꽤 가까이서 보인다. 주변이 탁 트여있어서 야경 찍기도 좋다.
따뜻한 햇볕이 들 때 주황빛의 대교와 롯데타워는 더욱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탁 트인 전망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야경 사진을 연습하기에도 제격인 장소이다. 밤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삼각대를 세워놓고 조용히 찍을 수 있어서 좋다. 야경 사진을 다 찍고 강변역 포장마차에서 뜨끈한 우동 한 그릇 먹으면 금상첨화.
5.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전망대
고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추천하는 장소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면 경복궁과 광화문을 탁 트인 곳에서 바라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높은 시야에서 광화문을 바라볼 것이라 상상도 못 했을 텐데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복궁은 마치 계획된 듯 조화로워 보인다. 바쁘게 지나다니는 차들과 한복 입은 외국인들, 시끌벅적한 광화문 행사까지 기분 좋은 복작거림에 셔터를 마구 누르게 되는 곳이다.
낮에 가도 좋고 밤에 가도 느낌이 색다른 곳이니
경복궁, 서촌, 북촌에 놀러 갔을 때 한번 방문해 보시길!
6. 롯데월드
롯데월드 성은 겨울에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특히 눈이 오는 날 하얀 눈을 배경으로 한 크리스마스 성은 배로 아름답다.
마치 스노우 볼 안에 들어온 것처럼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롯데월드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석촌호수 한쪽에서 성을 바라볼 수 있어 좋다.
겨울에 손도 시리고 발도 시려서 카메라 들고나가기 꺼려지는 날씨이지만 눈 오는 날에는 꼭 한 번쯤 출사 나가보길 추천한다!
'어쩌면 사진은 인류가 개발한 기술 중 가장 다정한 기능일지도 모른다.' (어노니머스 전시 중에서)
무거운 카메라와 복잡한 렌즈와 기능들은 여전히 날 어렵게 하지만, 출사가 가진 '우연함'과 '다정함'의 매력으로 출사를 꾸준히 나가고 있는 듯하다. 행운의 네잎클로버처럼 언제, 어디서, 누가 내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 영화같은 순간을 선사해줄 지 모른다는 두근거림과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는 다정함.
전문적 카메라가 아니어도 좋다. 스마트폰 카메라 혹은 오래된 필름 카메라여도 좋다. 카메라를 들고 어슬렁거리며 집 근처 골목길이라도 눈여겨 보시길 바란다. 언제 영화 주인공들이 나타나 필름이 돌아갈지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