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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웜스 Oct 23. 2024

축축한 손과 건조한 손

사람들 간 ‘대비’ 보정하기 #2


[축축한 손과 건조한 손 contrast -2]


 할머니는 어린 내 손을 잡아보시고는 손이 어쩜 그렇게 예쁘냐고 말씀하시곤 했다. 어릴 때는 통통한 단풍잎 같은 손이 뭐가 그렇게 예쁘다고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됐었다. 내 손은 짧고 뭉툭할 뿐만 아니라 촉촉한 걸 넘어서 축축하다. 다한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한증은 혼자 있을 때 힘든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잘해보고 싶을 때 훼방을 놓는 놈이라 밉다.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 가는 날이면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두렵다. 혹시나 악수하자고 할까 봐, 손을 맞대고 파이팅 하자고 할까 봐.


 언제부터 다한증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다한증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만 몇 가지 군데군데 머리에 남아있다. 친구가 “으 땀!”이라 소리치며 못 만질 것을 만진 것처럼 대했던 기억, 땀이 난 손을 만지고 ”더러워~~“라고 장난처럼 얘기하던 친구도 있었다. 내 손만 이렇게 땀이 많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난 절대 손을 같이 잡자며 먼저 손을 건넬 수 없었다.


다한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또 가장 두려운 시간이 아마 레크리에이션 시간일 거다. 손 맞대고 서로 몸을 의지하는 시간에 '손을 잡아야 하는 순간'이 몇 번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면 이미 내 신경체계는 초긴장 상태가 된다. 의식하지 않고 있을 땐 건조했던 손이 '어? 웬일로 건조하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땀을 발사하는 무서운 놈, 그게 바로 다한증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모두가 기대했던 레크리에이션 시간입니다!" 하는 순간 건조했던 내 손이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혹여나 옆에 손 잡은 친구가 놀랄까 봐, 땀이 많이 나서 더럽다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웠다. 예상대로 손 잡고 활동하는 게임이 많았고 난 우리 팀이 이겨서 게임을 계속하기보다 얼른 이 손잡는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시계만 내내 쳐다봤다. 최대한 손에 집중하지 않고 땀을 발사하는 녀석을 흥분시키지 않기 위해 평온하게 명상하듯이 게임에 임했고, 결국 친구의 "너 손에 땀이 왜 이렇게 많이 나?"라는 말을 듣지 않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손 잡아줄까


다한증인 내가 가장 편안하게 잡았던 손을 꼽으라면, 바로 할머니의 손이다. 할머니가 내 손의 땀을 손수건으로 열심히 닦아주신 것도 아니고, 할머니 손이 차가워서 땀이 식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할머니의 손도 나와 똑같이 상처가 있어 보였다. 평생 물을 만지고 살아오신 할머니의 손은 여기저기 갈라지고 거칠었다. 


손이 축축하다는 이유로 사람과 손 하나 제대로 못 잡아서 늘 속상했던 나, 그리고 지난날 늘 부엌에서 대가족이 먹을 밥을 짓느라 물을 많이 만져서 손이 못났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시는 할머니. 그 두 손을 맞잡았을 때 우린 서로의 공통점인 상처와 아픔을 말없이 공감했다. 남들에게는 찝찝한 내 손이 할머니에게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손이었고, 할머니의 건조하고 갈라진 손은 나에게 마음껏 잡을 수 있는 편안한 손이었다. 할머니의 손은 내 손을 부드럽게 펴고 조용히 말려주어, 마치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듯했다.




물리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마주할 때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장벽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 사람과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것을 감추기도 하고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이기도 한다. 사람은 자연스레 남들과의 차이점에 눈이 가기 마련이기에 우린 더 소심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차이 뒤에 숨겨진 말 못 한 상처에 집중한다면, 그런 장벽들은 금세 허물어져 생각지도 못한 부드러운 에너지로 마음이 연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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