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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웜스 Oct 23. 2024

굳이? 와 굳이.

사람들 간 ‘대비’ 보정하기 #1


+대비(contrast) 보정하기

대비는 '한 물체와 다른 물체의 색과 밝기의 차이'를 말한다. 물체 간 공통점보다 차이점에 집중하는 보정이다. 대비를 낮추면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차이가 줄어들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어둡고 밝은 부분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보다 둘의 대비를 줄이는 방향이 내 눈에는 더 편안하고 조화로워 보인다.

입체적 인물로 가득 찬 현대 사회, 사람 간 차이가 점점 확연히 두드러지는 사회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서로에 대한 혐오와 단절은 사람 간의 공통점에 먼저 초점을 맞춘 부드러운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비를 낮춰 보정한 공동체는 좀 더 포용력이 있는, 살 만한 사회가 아닐까.



[굳이? 굳이. contrast -1]


교사: 자 이제 프레임에 예쁜 꽃을 붙여볼까요?

학생: 굳이?


초등학교 미술 수업, 꾸미기 활동을 하기 전 교실에 울려 퍼진 “굳이?”라는 학생의 한마디는 꽤 강력했다.

교생 실습을 할 때 있었던 일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나는 사진을 주제로 미술 수업 구성안을 짰다. 프레임을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꾸미고 만든 프레임을 활용해 사진도 찍어볼 계획이었다. 그래. 계획은 그랬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수업은 없고, 아이들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을 보여주는 존재라는 걸 잠깐 잊었다.


들고 있는 건 내가 만든 예시 작품이다.


프레임에 붙일 꽃을 아이들 명수대로 열심히 프린트해서 '아이들이 좋아해 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눠줬는데 한 학생이 그 꽃을 굳이! 붙여야 하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 학생 생각에는 꽃을 붙이는 활동이 굳이 필요 없어 보였나 보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하나둘씩 "어 그럼 나도 그냥 안 붙일래. 선생님 벌써 다 만들었는데요?" "선생님 다 만들었는데 만화책 봐도 돼요?"라고 말하며 2시간 활동을 20분으로 단축시키는 마법을 보여주었다.


어린 학생이 별다른 의미 없이 한 말로 치부하기엔 '굳이'라는 단어는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여실히 드러내는, 무게감 있는 부사다. 인간은 '굳이?'라고 생각하며 불필요한 일을 과감히 건너뛰기도 하고, '굳이' 안 해도 될 일에 아등바등 매달리기도 한다. 지구의 다른 동물들 눈에 인간은 참 기이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새들이 보기에 인간은 '날개도 없으면서 굳이 하늘까지 올라와 낙하산 하나 매달고 뛰어내리는 특이한 존재'일 테니. '굳이'라는 말은 이런 독특한 인간의 특성을 정확히 포착한다.


여행자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속초 여행 때 일이다. 그해 속초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길가에 치운 눈이 내 키를 훌쩍 넘었고,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졌다. 평생 처음 보는 폭설에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들떴다. 영화 속 장면처럼 눈밭에 뛰어들어 누워보고, 눈사람도 실컷 만들었다. 한바탕 신나게 논 후 숙소로 갈 시간이 되어 핸드폰 지도로 길을 찾아보던 참이었다.


우리가 놀던 바다에서 숙소까지는 택시로 7분, 걸어서 40분 거리였다. 하지만 눈이 많이 쌓여 걸어가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릴 듯했다. 무거운 배낭과 패딩을 걸친 나는 당연히 택시를 탈 거라 생각하고 택시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두 친구가 해맑게 웃으며 "걸어가 보자!"라고 했다. 난 어리둥절했다. 7분이면 갈 거리를 이 눈길에 발까지 다 젖어가며 걸어갈 이유가 없었다. 내겐 '굳이' 할 필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셋 중 둘이 찬성하는 바람에 반강제로 숙소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가는 내내 투덜거렸다. 지금도 난 여전히 그들의 선택이 이해되진 않는다. (만날 때마다 논쟁의 대상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기들끼리 "힘내자! 거의 다 왔어!"라고 소리치며 걸어가는 게 마치 마라톤 대회 현장 같았다. 심지어 신나보이기도 했다. 난 택시 어플을 몰래 들락거리며 그 두 녀석을 신기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마치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인간을 보는 새처럼 말이다. 한 친구는 결국 새로 산 운동화에 발뒤꿈치가 벗겨져 피가 철철 난 채로 걸어 운동화에 피가 잔뜩 묻었는데도 그들은 도전의 흔적이라고 그저 해맑게 웃더라. 이상하고 또 이해할 수 없었지만 행복해보이긴 했다.




우리 인간은 모두 공통적으로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통해 행복을 찾아가는 존재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여도, 효율적이지 않아 보여도 입 꾹 닫고 응원해주자. 괜히 내가 맞다고 박박 우기거나, 타인의 '굳이! 사서 고생, 사서 행복' 라이프에 관여하지 말자. 우리 인간은 공통적으로 참 특이한 생물이니까. ‘굳이?’는 패스!  ‘굳이.’ 하고 싶은 일은 Keep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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