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영화 보기
아내한테 이끌려 영화를 보러 갔다.
보자마자 또 아내한테 이끌려 CGV 휴게실에 바로 앉았다.
아내가 가방에서 공책을 꺼냈다.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과제 보고서를 쓰듯 말없이 일단 썼다.
다 쓰고 나서 우리는 꽤 길게 얘기했다.
(아내가 취조하는 것 같았지만 성실한 답변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울었냐고 아내가 물었다.
나는 조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어느 장면에서 울었냐고 또 묻는다.
지하철 장면이라고 했더니 아내도 거기서 가슴이 미어졌다고 한다.
아내는 길고 길고 길게 긴 이야기를 계속했다.
예전에는 내가 영화평론가 저리 가라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보고 나서 바로 잊어버리니 답답하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했다며 만족한다고 한다.
아내가 좋다니 다행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을 겪으며 지나가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거친 기억 속에서 울고, 또 어떤 기억들은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게임을 좋아하며 게임 개발에 온 힘을 다하지만,
냉랭한 반응은 실업이라는 결과로 돌아온다.
그 와중 아버지의 죽음과 연인의 가출까지... 최악의 상황을 맞는다.
사랑은, 죽음의 이별과 산 이별을 함께 주고 떠난다.
불행 속에서 서로의 관계는 녹슨 자물쇠처럼 무디게도 끊어지고 만다.
세월이라는 시간 앞에서는 관계의 사슬도 그 위력이 맥을 못 춘다.
버려진 사랑은 괴롭지만, 버린 사랑은 슬프지 않을까?
여자는 지하철을 올라타고 떠나고,
남자는 같이 동승하지 못한 채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떠난 여자, 그리고 남은 남자.
서로 사랑했던 연인들의 현실적인 상황과 처지에서
우리는 분명 슬픈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헤어짐이 오히려 성공의 다음 발판이 되는 영화와 달리
우리는 여전히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아웅다웅하는 현실에 발이 묶여 있다.
삶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예술은 아름답게 빛난다.
삶을 살아가는 길에 그 어떤 감정도 없다면 어떻게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을까?
슬픔도, 괴로움도, 즐거움도, 기쁨도 표현할 때 아름답다.
그래서 영화는 청춘시절은 예쁜 색깔로 현재는 흑백으로 표현한 건 아닐까?
청춘은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아름다움 자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