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아내가 달려들며 내 옷을 벗긴다. 속옷까지는 아니다.
내 옷차림이 구질구질한지 바로 구박타령이다.
"노숙자야 뭐야!"
늘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본다.
하지만, 맨발 복장은 좀 편하게 입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옷이 가볍고 편해..."
갑자기 침묵이 흐른다.
그러더니 아내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그런 상 거지꼴로 꼭 나가고 싶어?"
아내의 거친 말에 생채기 나듯 가슴 한 편이 저릿해진다.
겨우내 맨발 걷기 할 때 늘 입는 옷이 있다.
아내의 큰오빠가, 똑같은 옷으로 마치 형님과 커플룩처럼 사 준 옷이다.
누비로 되어 가볍고 따뜻한 겨울용 겉옷이다.
나는 이 옷이 여러 모로 마음에 딱 들었다.
맨발 걷기 갈 때, 헬스 하러 나갈 때, 슈퍼에 심부름하러 갈 때,
스마트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갈 때... 등등
오매불망 일편단심 외출을 함께 하는 옷이 되었다.
아니 그 이상이다. 나와 한 몸이다.
겨울을 함께 나는, 내 동지다. 떨어지지 않는 내 껍질이다.
몇 번이나 현관 밖으로 내 던져졌다가 극적으로 구출된 옷이다.
이런 옷을 어떻게 떼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 동네에서 나 만나면 아는 체하지 마."
아내가 마지못해 한 발 뒤로 물러 났다.
"미친 듯이 죽고 못 사는 옷!"이라고 아내가 이름 붙인,
내 애착 옷. 올 겨울도 무사히 넘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어, 왔어."
사실, 그러는 아내도 별 수 없다.
나보다 더 상 거지꼴이다.
목 늘어나고 팔 늘어난 아내가 반겨준다.
누구나 오래 입는 '애착 옷'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현관에서 만난 우리는, 부창부수 천생연분 거지부부다.
후기
"입어! 입으라고! 왜 안 입어? 미친 듯이 죽고 못 사는 옷이잖아!"
"이제 더워. 날씨가 확 풀렸어..."
뒤끝이 긴 아내는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기어코 입혀서 내 보낸다.
"벗어! 벗으라고! 왜 안 벗어?"
아내의 말투를 따라 하며 늘어난 티셔츠 자락을 잡아당겼다.
"야이, 하지 마. 이 옷이 편하단 말이야."
아내가 웃겨 죽겠다며 나를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