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문장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몇 년 전에 스페인 화가인 ‘에바 앨머슨’전에서 전시를 관람했다. ‘행복을 그리는 화가’라고 알려진 만큼 그녀의 그림은 대체적으로 따듯하고 유쾌했다. 전시가 마음에 들었던 나는 관람 후 쿠션이나 문구류 등의 굿즈와 전시작품이 모두 담긴 화집도 구입했다.
화집 속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불여우(Astute)’이다. ‘불여우’역시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 비슷한 느낌인데, 여우 가면을 쓴 소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작품설명을 보니 그림속의 가면은 남들에게 현명하게 보이고 싶은 욕구를 나타낸다고 한다. 내가 흥미 있게 바라본 지점은 가면 속 얼굴의 평온함이었다. 흔히 우리가 가면을 쓰고자 할 때는 그 속의 얼굴이 무언가 감추고 싶은 것들, 가령 어둡거나 음울한 모습들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불여우‘라는 작품 속의 소녀의 얼굴은 굉장히 평온해 보인다. ‘아니! 이런 얼굴표정인데 왜 굳이 가면을?’이라는 의문이 들게 만드는 그림이다.
<에바엘머슨 화집 표지-'불여우'>
전시 중에 미디어 실에서 그녀가 그림을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인 고희영 작가가 글을 쓴 ‘엄마는 해녀입니다'.(글, 고희영, 그림, 에바앨머슨, 난다, 2017)라는 그림책을 영상으로 접했다. 제주의 우도 해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었다. 실제로 고희영 감독은 제주에서 태어나서, 그 바다의 해녀들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한 그녀가 그림책의 글을 쓰고, 역시 잡지를 통해서 제주 해녀들의 삶에 매료된 에바 앨머슨이 그림을 그린 이 책은 이야기가 특히 매력적이었다. 해녀 삼대의 모습을 다루었다. 바다를 사랑하는 할머니와 그 바다가 지겨워져서 젊은 시절에 바다를 떠나서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간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작은 딸의 이야기다. 당시에 영상을 보면서는 내가 굉장히 잘 알고있는 세계의 서사라고 생각했다. 나는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어가는 그 시기의 소년 소녀의 세계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뭔가 불안하면서도 대체할 수 없는 욕망이 가득하고 좌절하고 일어서고 다시 꿈꾸는 그 아찔한 한 여름과 땡볕과도 같은 그 세계에 곧잘 매혹되곤 했다. 그러한 세계가 배경이 되고 그러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텍스트들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림책에서 엄마가 바다에서 커다란 전복을 잡다가 바닷속에 빠질 뻔하는데 할머니가 구해주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 부분에서 할머니는 이야기한다.
“바다는 절대 인간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바닷속에서 욕심을 부렸다간 숨을 먹게 되어 있단다.”
그림책에서 해녀들은 바다 밭에 전복 씨도 뿌리고 소라 씨도 뿌리지만, 그 꽃밭에서 자기 숨만큼 머물면서 바다가 주는 만큼만 가져온다는 약속을 지킨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바다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많은 고전 텍스트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마지막엔 다시 한 번 흰 바탕에 이런 글씨만 쓰여있다.
<-고희영 글, 애바 엘머슨 그림, '엄마는 해녀입니다.'중->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 만큼만 있다 오거라.”
“예!”라고 나는 대답을 한다. 그러나 왠지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