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찾는 날들

by junetree

날마다 금강가를 걷던 날들이 있었다. 자전거도로의 한 켠으로 매일 5km정도씩 걸었다. 빠르게 걷다 보면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이 될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챙이 넓은 모자 안에서 오히려 희열을 느끼곤 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금강의 풍경은 뒤틀린 관계에서 오는 고통을 상쇄시켜주고, 상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게 해주었다. 걷기가 애도의 한 과정이 되었던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질문을 품게 되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몹시 궁금해졌다. 어떤 요소가 과연 사람을 성장하게도 하고 좌절하게도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다면 근원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고 아울러 많은 이들과 해답을 나누고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그 해답은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과 같은 곳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들뢰즈의 철학에서도 매혹되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의 근처를 서성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요소 중에 ‘기쁨’이라는 감정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쁨’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힘이라고 판단했다.

고백하자면 폭풍과도 같았던 모든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텍스트의 힘이었다. 문학이나 예술작품은 내게 절대적인 기쁨을 주었다. 20대의 한 시절과 30대 초반을 국내의 항공사에서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했었다. 국내나 국외의 체류지에 체류 중 일 때면 호텔 방에서 늘 소설이나 시를 읽었다. 시차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 호텔 방의 침대 옆 작은 전등의 주황색 불빛 아래서 만나는 소설 속 주인공들에 젊은 시절의 나는 늘 매혹되었다. 그 시절의 나의 플라이트 백에는 한국 작가들의 시집이나 소설집으로 가득했다. 이후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강의를 하러 가는 기차에서도 늘 책을 읽었다. 그림이나 영화나 문학을 읽고 그 안에서 만나는 여러 인간유형들에 발견의 기쁨으로 한 시절을 살아냈다. 평안을 얻었다. 그것은 진실을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읽고 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을 한다. 읽은 텍스트에 기대어 자신의 이야기를 어딘가에 ‘발설’하는 것으로 우리는 성장해 나간다. 그와 같은 고백이 스스로의 마음의 키를 키우고 몸집을 불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발설’이후에는 훨씬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이후에 금방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하는 과정을 거쳐서 끝내는 성장하는 것이다.

다시 금강가를 걸었던 어떤 날들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한다. 조금은 흐린 날이었다. 아마도 2월에서 3월로 들어가는 날 중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다른 날보다 오랫동안 걸었을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학기와 강의하는 과목에 대한 생각을 아마도 꽤 했을 것이다. 그 시기면 내게는 늘 떠오르던 서울의 한 대형 문구점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제법 오랫동안 그곳에서 새 학기 준비를 했다. 새 학기가 되면 그곳에서 단정한 노트를 사고 여러 색의 펜들과 연필을 구입했었다.

집에 들어와 식탁에 앉아 그림책을 읽으며 따뜻한 대추차를 마셨다. 이상하게도 책을 덮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그대로 침대로 들어가서 깊은 잠을 잤다.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추차에 들어있는 마그네슘 성분 때문일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그저 날씨 때문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아무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꿈을 꾸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꿈이었다. 자기 전에 읽은 그림책과 학기 전에 늘 가곤 했던 대형문구점의 이야기가 변형되고 압축되어서 나타난 꿈이었다. 문구점에서 나는 독일의 스테들러사의 형광색 연필 한 자루를 골랐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난 후 나는 어떤 영화에서와는 달리 울지 않았다. 너무나 완벽한 수면이었다. ‘우리는 매일 새롭게 태어나서 어제(아니면 자기 전)의 했었던 일들을 그저 계속 하는 것이구나. 그것이 인생이구나.’하는 다소 생뚱맞은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며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그림책을 펼쳤다. 책에서 나온 한 구절을 나는 노트에 그대로 옮겨적었다.

"태어난 아이는 물고기를 보면 잡으러가고 모기한테 물리면 가려워 했습니다. 바람이 불면 깔깔깔 웃었습니다."

노트에 옮겨적은 기쁨의 문장 위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천천히 소리내어 문장을 읽어보았다. 그 순간, 읽었던 그림책에서 기쁨의 문장을 찾아내고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졌다. 또한 그림책을 다른 텍스트와 비교하고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내 삶에 적용을 해 보고도 싶었다. 그림책은 비교적 읽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진실은 아주 크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기쁨’과 늘 함께 하는 인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오래전, 아주 흐린 봄날 담벼락에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때 누군가 이야기했다.

“아! 개나리는 역시 흐린 날이 제격이야. 밝은 날의 개나리는 너무 주책맞아 보이거든.”

나는 고개를 돌려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