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에’ -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꽃이!'

-기쁨을 파는 그림책 상점-

by junetree

‘월요일 아침에’ -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꽃이 피기를!’


‘월요일 아침에’, 유리 슐레비츠 글. 그림, 양녕자 옮김, 미래아이, 2006. feat. 데미안 허스트



특히 어린 시절에 현실의 삶이 남루해지면 상상을 하곤 했다. 상상의 내용은 주로 많은 아이들이 하는 진짜 부모가 따로 있는데 대단한 부자였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좋아하는 연예인과의 로맨스 등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러한 상상은 고독한 아이들의 일종의 도피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진전한 이야기이지만 영화 ‘조커’에서 주인공 아서플렉은 과대망상과 애정망상 등에 시달린다. 물론 그의 망상은 단순하게 고독해서 생긴 상상과는 다른 병적인 질환이다. 그러나 그러한 망상 역시 오랫동안 고립되어서 지나치게 고독한 이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유리슐레비츠의 작품들에서는 주로 심리적인 고난을 다룬다. 그리고 그것들의 해결방법 역시 버겁지만 또한 이상하게 편안하게 다가온다. ‘내가 만난 꿈의 지도’에서가 그렇고, ‘보물’에서역시 그렇다. 그의 가치관을 형성한 것이 삶의 이력일 것이다. 유대인인 가족을 따라 어린 시절부터 유럽을 떠돌던 경험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에서는 외로운 소년의 상상이 펼쳐진다. 우선 첫 장면은 창가에 놓여있는 인형과 소년의 뒷모습이다. 인형은 어두워서 모습이 잘 보이지 않고, 아마도 창 밖은 비가 내리고 있는 것 같다. 도시의 허름하고 낡은 건물들이 보인다. 지친 어른들의 도시에는 소년이 마음 기댈 곳이 없어 보인다.

이어서 소년은 이야기한다. 월요일 아침에 “왕이랑 왕비랑 어린 왕자가 집에 왔는데”라고 말이다. 그런데 소년은 집에 없다. 허름한 거리의 낡은 건물에 살고 있는 소년을 보러 그들이 오다니 의아하게 생각된다. 한편 소년은 비 오는 거리에 우산도 없이 키 큰 어른들 사이에 정류장에 서 있다. 어른들과 달리 소년이 버스를 탈 일은 없어 보인다. 무료한 소년은 그저 그곳을 떠돌 뿐일 것이다. 화요일에도 “왕이랑 왕비란 어린 왕자랑”왔는데, 이번에는 기사도 함께 왔다. 역시 소년은 집에 없다. 소년은 이번에는 지하철에 앉아있다. 관계없는 어른들 사이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수요일에는 근위병이 추가되었다. 소년은 세탁소 건물에 있어서 역시 그들을 만날 수 없다. 목요일에는 요리사와 함께 왔지만 소년은 거리에서 수레에 폐지 등을 운반하느라 그들과는 역시 만날 수 없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도 그들은 소년을 만나러 온다. 그러나 소년은 거리를 떠돌고 있다. 그들을 만나지 못한다. 드디어 일요일이 되었다. 소년은 이야기한다. “일요일 아침에 왕이란 왕비란 어린 왕자랑 기사랑 근위병이랑 요리사랑 이발사랑 광대랑 작은 강아지가 나를 만나러 왔어”라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과 만난다.


마침 나는 집에 있었어.

어린 왕자가 말했지.

"인사나 하려고 들렸어.”


늘 뒷모습과 옆모습만 보이던 소년의 앞 모습이 드디어 나타난 그림이다. 찾아온 모든 이들은 소년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소년은 수줍은 듯 미소짓는다. 다음 그림은 왕과 왕비 등이 그려진 카드를 손에 쥔 소년이다. 역시 소년의 상상이었다. 창가에는 인형이 앉아있다. 이번에는 인형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처음 그림과는 다르게 창밖으로 햇볕이 눈부시다.

늘 허름한 집에서 혼자 있던 소년에게 마음 둘 곳은 낡은 인형과 집에 돌아다니는 플레잉 카드가 전부이다.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고 지나치게 무료한 소년은 늘 거리를 떠돈다. 거리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그런 소년은 꿈을 꾼다. 상상을 해본다. 플레잉 카드 속의 왕이란 왕비랑 왕자 등이 나를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소년은 바빠서 그들을 만나지 못하고 드디어 일요일에나 그들을 만나주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일 것이다.

‘내가 만난 꿈의 지도’에서의 소년이 지도 속의 지역 이름을 외우는 것과 같이 그 상상은 현실의 도피처였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작가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투영된 작품일 것이다.

함민복 시인은 ‘꽃’에서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고 이야기했다. 소년의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도 아주 아름다운 꽃이 피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와같이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만들었으니 말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이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해골인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인간이 죽음에 대해 갖는 생각에 대한 일종의 비판으로 삶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천안의 아라리오 미술관에 소장품인 작품 찬가 hymn는 인체 해부 모양으로 6m 조각이다. 이 작품은 그가 아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그대로 크기만 다르게 해서 만든 것이다. 주로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는 플라스틱 장난감과 똑같이 만든 조각이 과연 예술작품으로 의미가 있을까하고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평범한 물건들을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가져와서 경계를 허물거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것이다. 플라스틱 장난감이지만 작가의 작품은 가장 전통적인 조각 재료인 브론즈를 사용해서 예술의 경지로 이끌어 내어 창작했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려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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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그리고 유리슐레비츠의 작품 속의 소년처럼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꿈을 꾸는 모든 이들도 그들의 삶에서 풍성한 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정말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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