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의 시그니처 향-' the scent of pages'-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다 몇 년전에 지방의 한 도시로 이사를 왔다. 서울을 떠날 때 가장 아쉬운 것은 그리운 장소와의 멀어짐이었다. 그리고 가장 아쉬운 곳은 바로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였다.
아주 오래전 그리고 또 아주 어렸던 어떤 날이었다. 수원에서 살던 나는 초등학교 졸업을 하게 되었다. 1980년대 초반이었으니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대학생이 되었던 서울에 사는 사촌언니는 내게 가방과 학용품 등을 사주기로 하고 서울로 데리고 갔다. 아마도 남대문 쯤에서 가방을 사고 롯데리아 햄버거를 먹은 후 언니는 나를 교보문고로 데리고 갔다. 어쩌면 그날이 내가 오랫동안 '책을 사랑하는 인간'이 될 수 있었던 첫날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곳에는 너무나 많은 책들로 가득했다. 언니가 그곳에서 책을 샀던가. 그것은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다만 오랜세월이 지난 이후에도 또렷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외국서적관에서, 책을 훔치다가 도망을 가는 한 남자였다. 젊은이는 책을 몰래 가지고 뛰다가 비교적 나와 가까운 곳에서 넘어졌다. 책이 떨어졌다. 바닥에 펼쳐진 하얀 종이와 검정색 글씨들. 사람들이 그를 잡았던가. 그것 역시 기억에 없다. 하지만 세상에서 책이 가장 많아보였던 그 곳, 유리문으로 투명하게 보였던 외국서적관, 그리고 그 곳에서 책을 훔치던 사내, 그가 넘어짐으로써 떨어진 책들, 내 앞에서 활짝 펼쳐진 책들, 충격적인 경험이었고, 매혹이었다. 동네의 도서관이 최고인 줄 알았던 내게 그것은 범접할 없는, 한 층 다른 새로운 세계였다.
성인이 되어서 취업과 함께 서울로 가면서 시간이 날때마다 들렀던 곳도 교보문고였다. 더운 여름날이면 하루종일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으며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었다. 지칠때면 문구를 구경하기도 했다. 그곳만 들어가면 왠지모를 평안을 얻었다. 그 곳에서 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 바로 형언할 수 없는 향이라는 것은 아주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는 쥐스킨트 소설의 ‘향수’의 주인공과 같이 그 향을 얻기 위해 안달한 것은 아니었지만, 디퓨저로 판매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사는 작은 동네의 교보로 향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방향제며 디퓨저등을 구입했다. 서재에 가져다 놓은 'the scent of pages'dml 디퓨저는 비록 시슬리의 오뒤 스와르와 같이 강한 향을 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가 가만히 디퓨저 안의 막대를 꺼내 향을 맡아보면 어린시절 겨울날의 훔치고 싶을 만큼 책이 매혹적이라는 것을 알려준 한 사람을 만났던 날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