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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tree Jun 24. 2022

2) "괜찮은 인생이야!"

-TWG 캐모마일티를 마시며-

2) "괜찮은 인생이야!"     


-TWG사의 캐모마일티-   



봄학기를 마치고 학생들의 기말고사 문제지를 채점한다. 종강을 하고 성적을 내는 이 시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월, 그리고 초여름이다. 창 밖으로 보이는 빼곡한 녹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날들이다. 일년에 몇 달 동안 허용된 이 날들을 제대로 만나고 싶기에, 나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아름다운 유월을 평온하게 맞이하고 싶다.

백명이 넘는 학생들의 답안지에 사선이나 동그라미를 그려 넣다보면 그들의 얼굴이 떠오를때가 있다. 대개는 미소가 지어지는 이름들이다. 비록 한학기 동안의 시절인연으로 만났던 관계였지만 그들에게 난  '나쁘지는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아니 어쩌면 '곧 기억에서 사라질 그저 평범하고 무난했던 사람'으로 남기를 바란다.

포세린 식탁에 앉아 채점한 시험지를 서류봉투안에 넣고 다시 학생들의 출석부를 정리한다. 얼마전 찾아 온 노안으로 안경을 쓰고 출석부를 정리하다보니 차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방의 부페장에서 TWG의 캐모마일티를 꺼내 차를 만들고 얼음을 넣는다.

고통을 통과해 여기에 앉아 녹음이 짙어가는 6월을 바라본다. 그리고 또 한 학기를 마치고 곧 여름방학을 맞는다. 학생들은 성적이의 신청을 할 수도 있고, 그 기간이 끝나면 나는 또 몇 가지의 수업들을 들을 생각이다. 주로 그림과 영화수업으로 제법 재미있을 것도 같다.  방학중에는 급여가 없을것이며, 8월말까지 소득세를 내야한다는 생각을 한다. 여름휴가를 대천으로 갈까 제주로 갈까도 잠시 생각해본다.  창 밖으로는 햇볕에 나뭇잎들이 부서진다. 사각사각 스으윽하는 소리가 들린다.

TWG사의 아이스드 캐모마일티를 마시며 생각한다.

"참 괜찮은 인생이야!"

고레헤다 히로카츠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는 세번의 장례식 장면이 나온다. 그 장례식에서 릴리 프랭크가 했던 대사가 오랫동안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

  "괜찮은 인생이었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든지 혹은 장례를 마치고 누군가에게 '괜찮은 인생'이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학생들의 기말고사 답안지와 출석부가 어지럽게 쌓여 있는 포세린 식탁에 앉아 TWG사의 아이스드 캐모마일티를 마신다. 회전하는 작은 선풍기의  바람도 반갑다. 거실 창 밖으로는 부드러운 바람에 나뭇잎들이 천천히 움직인다. 참 괜찮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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