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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Oct 28. 2021

[에세이] 경력이 없으면 국물도 없지

사회 초년생, 카페 아르바이트

두 눈동자가 아이폰 화면을 슉슉 살피다가 일곱 글자 위에 톡 걸린다.


카페 경력자 우대.


카페 업무 경험이 없는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원조건을 훑는다. '신입 가능'이라는 문구를 찾기 위해서다. 에잇. 경력자만 지원해달라고 한다. 묘한 긴장감은 가루처럼 흩뿌려진다. 다른 카페 아르바이트 공고를 찾아 눈동자를 다시 이리저리 굴린다. 검지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인 지도 어느새 한 시간이 후딱 지났다.


‘카페 무경력자는 국물도 없네…….’


이곳저곳 지원서를 넣어도 열 개 중 여덟, 아홉의 경우는 열람만 할 뿐이었다. 가끔 한두 군데에서 면접 연락이 오기는 하지만, 날짜가 잡히더라도 방심하면 안 된다. 나는 여러 면접자 중 카페 무경력자인 한 명. 일은 처음이지만 분명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어필해야 한다.


얼마 전에 지원한 합정동의 한 디저트 카페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듣기 좋은 목소리 톤과 친근한 미소, 그리고 클리어 파일에 폭 싸맨 귀여운 이력서를 지참한다. 오분 전에 도착한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자리를 안내하는 카페 사장의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편안하다. 이전 샐러드 프랜차이즈 알바 고용주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는 참 마음 아프게 귀에 박혔었는데. 카페도 카페 나름이겠지만 이런 개인 카페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따뜻함은 정열에 불을 지핀다. ‘이번에는 꼭 돼라.’


면접이 시작되고 사장님은, 아니 사장은 이력서를 찬찬히 살펴보며 질문한다. 사는 곳, 출퇴근 방법, 커피와 빵에 대한 관심도 등등. 그리고는 훅 들어오는 한 마디.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이전 업무 경험에 관해 묻는다. 


“카페에서는 일을 안 해보셨네요?”


나는 자동응답 전화기의 녹음본처럼 이전 알바와 카페 알바의 유사한 점을 재빨리 설명한 뒤 카페 사장의 마스크 너머 표정을 살피려 눈동자를 굴린다. 아리송하다. 면접이 한두 개 더 있으니 문자로 연락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면접이 끝났다. 어깨가 살짝 처진다. 카페 알바 경력이 있는 면접자가 있으면 나는 밀려날 것만 같다. 


개인 카페에서 잠시 일을 하고 카페 알바의 실크로드를 걷고 있는 친구를 부러운 마음으로 떠올리며 털레털레 7번 출구로 향한다. 기계와 복잡한 레시피를 사용하는 일인 만큼 업무를 바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겠지. 다만, 조금 서럽다. 경력자만 뽑는다면 무경력자는 어디서 경력을 쌓으라는 말입니까. 


집으로 돌아와 차가운 물 한 잔을 들이켜고 구직 사이트를 확인한다. 열람 표시만 뜨고 깜깜무소식인 지원 현황을 보고는 한숨이 푹 나온다. 해왔던 알바와 비슷한 업종도 슬금슬금 살펴보지만, 시선은 다시 카페 알바 공지로 향한다. 아직은 카페 알바생으로써 살아보고 싶은 로망이 경제적 쪼들림보다 크다. 


소개서를 좀 더 수려하게 수정하고 싹싹한 이미지와 같은 조미료를 살짜큼 첨가하고서는 잠시 멍을 때린다. 하얀 천장에는 알바 지도가 물결처럼 아른거린다. 그 많은 카페 중에 내 자리는 어디에 있나. 


위잉-. 짧은 핸드폰 진동으로 정신을 차리고 메시지를 확인한다. 


‘아쉽게도 이번 채용에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추후 기회가 된다면 좋은 인연으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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