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발버둥 쳐도 최고가 될 수 없는 당신
저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엇이든 곧 잘했다.
2살 터울 누나가 학습지를 배우고 있을 때였다.
누나가 정답을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을 때,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내가 자꾸 정답을 말해버려서 많이 맞곤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린이 스포츠단에서 수영을 배울 땐,
4살 월반하여 초등학교 6학년 형/누나들과 함께 훈련했다.
중학교 때에 과외학원에서는 나 혼자 낮은 학급지의 학생이었지만,
최고 학군지의 학생들과 같은 반에 배정되어 경쟁했다.
대학 입시에서는 최상위권 대학은 아닐지라도 서울 4년제 공대에 입학하며,
지방의 저 학군지 학생치고는 나름 괜찮은 성과를 냈다.
취업은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최고 대기업의 계열사에 입사하여
34살에 연봉 1억을 받으며 다니고 있다.
위와 같은 성과를 얻기 위해 나는 분명 노력해 왔다.
누군가의 시각에서는 훌륭한 성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시각에서는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제, 누군가의 시각이 아니라 나의 시각에서 판단하면 후자의 의견에 가깝다.
나는 내 인생이 2등 인생도 아닌, 3등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최고가 되고 싶어, 최고들 사이에서 경쟁하며 노력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 옆에서 그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장점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최고들이 좋다는 것을 무작정 따라도 해 보며, 그들의 진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나 모든 승부처에서 나는 최고가 아닌, 2등도 아닌, 3등의 성적표를 받았다.
초등학생 시절 농구대회 입상에 실패하여 참가에 의의를 두었고,
중학생 시절 특목고 진학에 실패하여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고,
고등학생 시절 SKY대입 목표달성에 실패하고 서울 4년제에 입학했고,
대학생 시절 학교에서 존재 감 없이 공부만 하다 취업은 대기업 '계열사'로 했다.
내가 애쓰고 발버둥치며 투입한 노력이라면 1등의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언제나 3등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언젠가부터 내 인생은 3등 인생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혀,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할 때면 그 생각이 늘 내 발목을 붙잡는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생각이 들며, 나 자신의 자만스러움에 대한 혐오도 생겼다.
"일류와 아류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그 차이를 파악하지 못한 채 현상을 지속해오고 있는 것 자체가 아류다.
일류가 일류인 이유는 1등을 제외하고는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노력을 한다던지,
차별화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던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갖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입하여 얻은 경험이 있다던지,
분명 노력 없이 달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4년을 살아오며 이제야 지난날을 돌아보니,
이제는 스스로 받아들일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역량 밖에 있는 것에 대한 탐욕 때문에 나를 갉아먹는 것은 어리석다.
3등의 인생에도 노력과 성취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분명 행복도 했다.
지나친 욕심은 나의 행복을 행복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행복에 대한 눈을 멀게 만든다.
내가 1등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컸든 간에, 노력했고 작은 성취라도 있었다면
그 성취에 감사하고 주변사람들과 행복을 나누며 사는 것이 내가 만든 기준에서의 1등이 아닐까?
1등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지식이 많은 사람, 부가 많은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들도 없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바로 "지혜"이다.
지식과 지혜는 동일한 것이 아니며, 하나를 달성한다고 하여 동반되어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지혜를 발휘하는 길이자, 진정으로 내 인생에서 1등을 하는 방법이 아닐까?
어쩌면 뻔한 결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다.
여러분들은 스스로 몇 등 인생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처럼 현명한 사람들은 아마 본인 인생에 등수조차 매기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