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휴학일기 03화

빨래, 첫 뮤지컬 관람기

언젠가 마르는 빨래처럼, 슬픔도 마르겠지

by 사이



언젠가 한 번 해야지, 해야지 하며 미뤄둔 것들이 참 많았는데 ‘뮤지컬 관람하기’도 그중 하나였다.




어떻게 예매해야 하는지, 어떤 뮤지컬을 봐야 하는지 너무 아는 것이 없어서 막상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웠다.


특히 뮤지컬은 오래 즐겨온 마니아층이 많고, 평상시에 잘 접해보지 않은 분야였기에 도전하는 데 꽤 용기가 필요했다.


게다가 관람료도 비싸서 괜찮은 공연을 신중히 선택하고 싶었고,

보려면 멀리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에 대충 알아보다가 관두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3년 전쯤부터 눈에 담아두던 공연이 있었다. 바로 ‘빨래’였다.


내가 사는 원룸 옆쪽에 예쁜 주택가가 있는데,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며 적응해 나가는 동안 가장 처음 마음에 들었던 장소였다.


그 주택가를 산책하다 보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모양의 건축물, 마당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 돌틈 사이에 자란 작은 꽃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곳은 푸릇푸릇한 싹이 돋아나는 봄과 여름의 정취를 가장 잘 담아내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초여름, 꽃샘추위가 지나고 오랜만에 찾아온 따뜻한 날이었다.

햇살이 반가워 천천히 걸으며 공기를 온몸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그때 하늘을 올려다보니 베란다 헹거에 널린 빨래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그 장면이 유독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그리고 어느 날, 뮤지컬 공연 일정을 둘러보던 중 <빨래>라는 제목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때도 ‘언젠간 봐야지’하며 흘려보냈고, 그저 꿈처럼 남겨둔 채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러다 휴학을 하면서, 꿈으로 남겨뒀던 것들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글쓰기, 사진 찍기, 탈색해 보기 등…)


티켓을 예매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문화의 날 할인 행사를 발견했다. 바로 <빨래> 뮤지컬 티켓이 반값으로 나와있었고, 앞자리에 좋은 자리가 단 하나 남아있었다.


혹시라도 놓칠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둘러 결제 버튼을 눌렀고 예매에 성공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서울 여행 일정이 생겼고 마음이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했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뮤지컬의 줄거리를 대략적으로 훑어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서울역에 도착했고, 공연 시작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공연장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드디어 공연장 입성.


예매티켓을 확인하는 줄은 길었지만 금방 빠졌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게 내려오는 바람에 공연 시간에 늦을 뻔했다.

(살면서 이런 속도의 엘리베이터는 처음이었다.)


러닝타임이 3시간이라 시작 전에 화장실을 다녀올까 했지만, 중간에 15분 휴식시간이 있다는 말을 듣고, 길게 늘어선 화장실 줄을 뒤로하고 서둘러 입장했다.


공연장에 들어가서 자리를 찾아 앉으니, 생각보다 무대와 가까운 자리였다. 덕분에 배우들의 얼굴 표정과 세트장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고,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빨래>는 서울살이의 힘겨움을 그린 작품이었다.


작가의 꿈을 품고 서울 서점에서 일하는 20대 ‘나영’과 가족을 위해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 ‘솔롱고’. 이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서울에서 1년 남짓한 회사생활 동안 나도 많이 힘들었다. 집세 부담, 개인주의 문화, 희미해져 가는 꿈과 의지. 그래서 공연을 보는 동안 ‘나영’에게 깊이 이입되었고, 혼자 웃고 울기를 반복하며 공연에 제대로 빠져들어 관람했다.



3시간 동안 수많은 감정이 오갔다.

같은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을 보며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사는 게 다 똑같구나. 다들 이렇게 힘들구나.’


나는 내 힘듦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것만 같아서 한심했는데 사실 모두가 비슷한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뮤지컬을 보며 울고 웃은 것처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일이 있다고 계속 슬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웃음 나는 순간이 있다면 그 속에서 찰나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언젠가 마르는 빨래처럼, 슬픔도 시간 지나 마른다.’


공연 속 대사였던 이 메시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마를 슬픔을 안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나의 작은 기록노트

: 커피와 물 잔을 함께 놓아주시던 사장님의 다정한 배려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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