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축구직관, 탁 트인 하늘과
고등학교 때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게 같이 축구를 보러 가자고 했지만, ‘골대에 공이 들어가면 1 득점’이라는 기본적인 룰밖에 몰랐던 나는 늘 “다음에 기회 되면 가자”는 말로 미루다가 결국 졸업을 해버렸다. 처음에는 경기 관람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본인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나쯤 갖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 스포츠, 애니메이션 등 오랫동안 한 가지를 깊이 좋아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나는 무언가를 좋아해도 금방 식어버리는 편이라, 어떤 것에 깊이 빠져 오랫동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멋져 보였다. 나는 그중에서 특히 스포츠 관람을 취미로 삼는 것에 관심이 있었는데, 텔레비전에서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환호성과 뜨거운 열기를 보며, 복받치는 감정이 시시각각 오가는 그 현장에 언젠가 나도 있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스포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는 혼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괜히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흥미를 잃어버리고, 좋은 취미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허투루 날려버릴까 봐 걱정스러웠다.
그러던 중, 축구에 열광하는 남자친구 덕분에 함께 경기장에 가보자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또 기회를 놓칠까 봐, 남자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같이 갈래?”라는 말에 덥석 따라나섰다.
가는 길에 드라이브 스루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 해서 마시면서 경기장으로 향했다. 첫 직관이라 가슴이 많이 두근거렸다.
차를 타고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길가에는 이미 차들이 빽빽했고 주차장에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경기장 주변은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남성팬들이 훨씬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성별을 가리지 않고 친구, 연인, 가족 단위 등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축구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스포츠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
휘잉-
찬바람이 얼굴 밑을 쓱 스치고 지나갔고 온몸이 순간 움츠러들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외투 없이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이 보일 정도로 따뜻했는데, 하필 경기 날 기온이 뚝 떨어졌다. 목폴라에 핫팩을 붙이고, 후드티에 패딩까지 겹겹이 껴입어,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차가운 바람은 그 모든 것을 가볍게 뚫고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있었다. 굿즈샵에도 긴 줄이 늘어섰고, 다들 추위를 잊은 듯한 표정이었다. 나도 그 분위기에 힘을 얻어 들뜬 마음으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훨씬 넓고 아름다웠다.
푸른 잔디가 시야를 가득 채웠고, 머리 위로는 전봇대도, 전깃줄도 없이 탁 트인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경기 시작도 전에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며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건너편에 유니폼, 팸플릿, 가방, 머플러 등 온몸을 굿즈로 장식한 팬들이 응원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덕분에 멀리서 봐도 어느 팀 팬인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친구도 주로 응원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는데, 그곳은 인기가 많아 예매가 쉽지 않다고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남자친구가 현재 경기 상황과, 어떤 걸 중요하게 봐야 하는지 등 경기 흐름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던 중, 우리 팀 선수가 골을 넣었다!
우렁찬 환호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전광판에는 선수의 얼굴이 크게 떠올랐다. 곧이어 마이크를 통해 선수의 이름이 울려 퍼지자, 사람들이 그 이름을 따라 외치고, 응원석에서는 장엄한 응원가가 터져 나왔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왠지 가슴이 쿵쿵 뛰고,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그들의 일부가 된 듯한 깊은 소속감이 느껴졌다. 같은 팀을 응원하며 한마음 한뜻이 되는 그 순간, 낯선 공간에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Half Time’
추위가 점점 뼛속까지 스며들어 경기가 진행 중인데도 매점으로 달려가 핫팩이라도 사야 하나 고민될 정도였다. 그렇게 추위를 버티다가 드디어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우리는 따뜻한 음식을 찾아 경기장 아래로 내려갔다.
경기장 밑에는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한쪽이 뻥 뚫려 있어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흔들리는 테이블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잔치국수와 어묵을 주문했다. 국수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바람이 너무 강해 김이 이리저리 흩어졌다. 한 시간 넘게 추위에 떨다가 마시는 따뜻한 국물 한 모금.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배가 채워지니 온몸이 서서히 녹아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밖에서 오래 있어본 게 얼마만이지?’
아무리 추워도 이동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이런 경험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실내에서는 계절에 상관없이 적당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한겨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도 춥다고 느끼지 않지만, 경기장에 도착해 차가운 커피를 들고 내렸을 때 온몸이 얼어붙는 감각을 제대로 경험했다.
2부 경기에 살짝 늦었지만 따뜻한 식사 덕분에 더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었고, 경기는 2:2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경기 중에서, 잘 이해되지 않은 부분도 많았지만, 앞으로 더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경기장을 나서며 이런 생각을 했다.
‘다음번엔 응원가를 외워 와서 함께 불러야지’
첫 축구경기 관람은 즐겁고 특별하게 마음에 새겨졌다. 축구를 잘 몰라도 괜찮으니, 마음이 지칠 땐 이곳의 열기 속에서 다시 한번 숨 돌릴 수 있기를!
PS.
이후에 한 번 더 경기를 보러 갔는데 이번엔 줄이 별로 길지 않아서 갖고 싶었던 머플러를 구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전 날까지 완연한 봄날씨였는데 경기 당일이 되자 기온이 뚝. 떨어져서 오들오들 떨며 경기를 봐야 했다. 이쯤 되면 경기관람이 아니라 추위 강화훈련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