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던 사람에서, 나서는 사람으로
전주로 거주지를 옮긴 지 벌써 햇수로 4년째. 그동안 전주 국제영화제에 단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 사는 친구가 전주여행을 와서 나의 자취방에 머물렀다. 그 친구가 영화제를 보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듣고서야, 이 행사의 규모와 존재감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휴학 중인 지금이야말로 놓치지 말고 영화제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홈페이지와 블로그, 유튜브, 기사 등에서 정보를 열심히 수집하기 시작했다. 축제처럼 거리에 부스가 나열되는 건지, 제휴업체들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는지,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영화는 어떻게 예매하고 어디서 상영하는지 등,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개막식, 폐막식, 골목상영, 전주 톡톡, 와이드토크 …’
행사명은 넘쳐나는데 정보는 파편적이었다. 입장료가 무료면 예매는 하지 않아도 되는 건지, 현장에서도 가능한지, 독립영화 상영관은 따로 있는 건지 헷갈렸다.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고 지금 상황이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서울커피엑스포’를 앞두고도 그랬었다. 나는 그때의 경험에서 배운 대로 결단을 내렸다.
“일단 가보자.”
정보만 모으다 보면 오히려 더 겁이 나기 쉽다. 지금쯤이면 용기를 낼 차례였다.
버스를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제가 열리는 거리로 향했다. 영화제 기간 중에 그 거리로 나가는 건 처음이라 잘 몰랐는데, 꽤 많은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예상했던 화려한 부스나 안내요원은 없었다. 대신 거리 곳곳엔 깃발처럼 펄럭이는 영화제의 배너와 식당이나 카페 앞에 붙은 ‘26회 전주국제영화제 제휴업체’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그날 목표는 두 가지였다. 오후 4시 30분에 하는 ‘전주 톡톡’과 밤 8시에 진행되는 ‘골목상영’. 전주 톡톡은 출연 배우들의 영화 관련 인터뷰를 들을 수 있는 행사라고 들었다. 행사장 앞에 무작정 줄을 섰지만, 뒤늦게야 예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땐 이미 매진이었고, 어쩔 수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내 뒤로 길게 늘어선 줄을 뒤로하고 뜬금없이 줄을 나오는 나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의식되어 조금 창피했다. ㅠㅠ)
아쉽지만, 가장 기대했던 ‘골목상영’을 기다리기로 했다. 야외에서 벽돌 위에 스크린을 띄워 영화를 감상하는 독특한 형식! 그전에 시간이 많이 남아, 미리 저장해 두었던 영화제 제휴업체 카페목록을 살펴보며 찾아갔지만, 첫 번째, 두 번째 후보 모두 만석이었다. 결국 제휴업체 카페를 가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좋아하던 카페를 찾아갔는데, 다행히 바 좌석에 딱 하나 남아있던 좌석을 잡을 수 있었다.
나는 자두향이 난다고 소개글이 적혀있는 에티오피아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했다.
(에티오피아는, 서울 커피엑스포에서 다시금 푹- 반하게 된 원두였다. :))
책을 읽고 다이어리를 쓰며 저녁을 기다렸더니 떨리는 마음도, 긴장도, 카페의 분위와 커피 향에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렇게 나만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마음이 차분히 진정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영화 시간이 가까워지자 간식을 사러 갔다. 약간 출출하기도 하고 영화관람을 더 즐기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커피와 빵을 챙겨갔는데 음식물 반입은 금지였다. 들고 있던 음료를 허겁지겁 마시고, 빵도 서둘러 먹고서야 입장했다. 그러는 동안 이미 좌석은 만석이 되었다. 결국 나는 뒤쪽에서 한 시간 반동안 서서 영화를 관람했어야 했다. 무릎과 허리가 아팠지만, 선선한 바람과 진하게 퍼진 풀냄새 덕분에 더 ‘야외’라는 느낌이 잘 전해졌고, 그만큼 골목상영이라는 행사의 취지를 맘껏 느끼며 잘 관람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전날 비가 와서 풀과 흙냄새가 진했다.)
<너도 모르게>
젊은 여자가 계속 중년 남자에게 화를 낸다. 여자의 옷만 바뀌고 남자는 그대로 묵묵히 운전만 한다. 여자의 감정은 격렬하고, 그녀 자신도 그런 감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인다. 언성은 점점 높아지고 싸움은 더욱 고조된다. 결국 여자의 성에 남자가 급하게 차를 돌린다. 하지만 멈춘 차의 조수석엔 아무도 없었고 고개를 떨군 채 공허한 눈으로 멍하니 아래만 바라보는 남자만이 남아있다.
남자는 그대로 그 여자의 집에 찾아가서 벨을 누른다.
“000 씨 있습니까?”
“그런 사람 없는데요.”
남자는 대답을 듣고서도 자꾸 벨을 누르고 같은 질문을 했고 그 집에 사는 사람은 남자에게 화를 내고 응답기를 꺼버린다. 남자는 혼잣말로 이렇게 말한다. 그 여자가 여기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고. 남자는 젊은 시절에 함께했던 여자를 떠올리며 그리워하지만, 여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여 현재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듯하다
: 골목상영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여주인공은 성격이 꽤 예민한 사람처럼 보였고, 그런 자기 자신을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는 것 같았다. 평범한 성격의 남자와 계속 부딪히며 스스로를 원망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고, 그 모습이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도 성격이 예민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다보니 주변에 깊이 친한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전화 한 통을 걸기까지도 수십 번을 고민하고 걱정하는 나는, 아무 때나 불러내어 자연스럽게 노는 친구가 있는 사람이 가장 신기하고, 부러웠다.
예민하고 까칠한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자아를, 가족에게조차 숨기고 살아간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놓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남자친구'이다. 그에게는 나의 감정이 여과 없이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아직도 내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익숙치 않아서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는 때가 많아, 진심과는 다르게 표현될 때가 많다. 결국 그 피해는 가장 가까운 그 사람에게 간다. 자존심을 굽히지 못한 채 서운함을 내세우고 싸움을 걸 때, 그 순간 가장 미운 건 사실 그 사람이 아니라 그걸 그냥 넘기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깊게 다가왔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자신조차도 낯설어하는 여자의 모습이 너무 슬펐다. 연애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끊임없이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관계다. 그게 나에게는 여전히 가장 어려운 숙제이기에, 이 영화는 가장 깊이 공감되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너에게 닿기를>
청각장애를 가진 여학생과, 그녀를 다치게 한 같은 학교 여학생. 두 또래 소녀의 화해 이야기이다. 다치게 한 여학생은 피해학생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기 위해 여러 번 집에 찾아가지만, 피해학생은 용서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를 다치게 한 여학생은 포기하지 않고 피해학생이 좋아하는 불꽃놀이를 준비한다. 그것을 매개로 두 사람은 마침내 마음을 열고, 용서를 이야기한다.
: 영화를 보면서 나의 인생 첫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고등학교 시절 나의 전부였던 옛친구가 떠올랐다. 그 시절의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의 감정에 서툴렀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몰라 늘 혼란스러웠다. 지금은 멀어진 그 친구가 문득 그리웠다. '내가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나도 너에게 용서받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마음에 있었다.
<언젠가 알게 될 거야>
엄마도, 남편도, 아이도 잃고 제주에서 시어머니와 둘이 귤농사를 하며 살아가는 엄마. 하나 남은 딸은 항상 서울로 다시 올라오라며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엔 어렴풋이 깨닫는다. “세상이 멸망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거야.” 라는 엄마의 말을.
: 무너짐 속에서도 삶을 지속하는 방식에 대해,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다. 세월호, 이태원, 애도, 그리고 삶의 지속… 슬픔을 견디는 방법은 모두 다르다는 걸, 우린 그저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걸 배웠다.
cf. 감독님께선 세월호를 떠올리며 작품을 만들었고, 만약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는다면 어떨지에 대한 감정을 영화에 녹여냈다고 하셨다.
며칠 뒤, 영화제의 피날레. 폐막식에도 참여했다.
이번엔 외부음식을 사가는 실수도 하지 않았다. (길은 또 헤맸지만.) 그 공연에서는 유명배우 김보라님도 MC로 오셨고, 유명인사들이 무대에 올랐다. 무용공연과 수상작 소개, 감독들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야 영화제의 규모가 얼마나 큰 지 그제야 체감이 됐다.
마지막 상영작은 <기계의 나라에서>라는 영화였다. 외국인 노동자를 다른 작품이었는데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을 차별하고 거리를 두고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외국인 노동자 = 불법체류자라는 무지한 생각과 일하러 왔으니 당연히 고생해야 한다는 오만한 시선이 있었다. 나는 그랬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한국에서 일하며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떤 생활을 하는지 눈으로 직접 보니까 그 현실이 너무나도 잔인했다. 어떤 고용자들은 자신이 고용주가 아니라, 노동자의 ‘주인’이 된 듯이 행동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머릿속에 가장 맴돌았던 부분은 “한국사람들은 자기들끼리도 그래” 였다. 나는 그 부분에서 내가 한 사람으로서 대우받지 못하며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이 떠올랐고, 한 순간에 외국인 노동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불 수 있었다. 그들의 고단한 노동강도에 비해 나의 경험은 새발의 피겠지만, 고용인, 고용자, 외국인, 한국인 이런 걸 모두 떠나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어떠한 위치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최소한의 도덕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최소한 나와 내 가족이 그런 대우를 받지 않길 원한다면 말이다.
사람은 무지하면 이기적이게 된다. 인격적인 대우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이다. 그걸 모르면, 우리는 너무 쉽게 잔인해질 수 있다.
독립영화는 그저 나의 가까운 일상이라 좋다. 상업영화처럼 두근거림이나 짜릿한 전개, 명확한 결말은 없지만, 감독들은 심심한 백숙처럼 영상을 만들어내며 관객에게 조용히 질문을 건넨다. 그 맹숭맹숭한 영화를 볼 때면 나는 왠지 나 자신과 심오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만 같다. 나 자신과, 지금의 삶과, 외면하고 싶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들과 묵직한 대화를. 특히 폐막작을 보며 더 확실히 느꼈다. 독립영화는 대중의 기분을 맞추기보다, 우리가 외면하고 지나치는 어둡고 불편한 부분을 정확히 응시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고요하고 단단하게 스크린 위로 끌어올린다.
보기 싫지만 꼭 봐야 하고, 모른 채 넘어가기엔 너무 중요한 이야기들. 감독들은 그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영화라는 형식으로 세상에 전한다. 그 창작의 용기와 정직함이 존경스러웠고, 그래서 독립영화가 더 오래 가슴에 남는다.
P.S
골목상영이 끝난 뒤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나는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사실 학창 시절 내내 “좀 크게 말해봐”라는 말을 듣던 소심한 내가, 그것도 맨 처음으로. 그 순간이 나 스스로도 참 신기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자리에선 다들 준비된 질문을 하는 걸까?’ ‘독립영화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들만 질문할 수 있을 거야.’ 같은 생각에 움츠러들었었다. 괜히 수준 낮아 보이면 어쩌나 걱정도 됐고, 멋진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 그 정적 속에서
‘그럼 그냥 내가 첫 번째로 바보 같은 질문을 하자.’는 마음으로 손을 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마이크를 건네받고 질문을 하고 나니, 내 머리 위로 반짝이는 별이 하나 뜬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다. 질문을 잘하려는 사람보다, 모르기 때문에 질문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서울커피엑스포, 국제영화제. 모르지만 일단 부딪혀보자 나섰던 그 경험들이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들고 있었구나 싶었다. 뒤로 숨지 않고 서툴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대견하고 좋았다.